한범석은 평거에 살았다.
그를 낳기 전, 그의 아버지 영세공이 잠결에 꿈을 꾸는데 강 건너 산기슭 덤불속에서 한 마리의 호랑이(용이라고도 함)가 나타나더니 자기의 입으로 들어왔다.
꿈에서 깬 영세공은 입을 꼭 다문 채 사랑을 나와 내실 방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는 문을 잠가둔채 열어주지 않았다.
입을 열면 입안으로 들어온 호랑이가 나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할 수 없이 하녀의 방으로 갔다.
그리하여 태어난 아이가 한범석이었다.
아기 범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빼어나 대여섯 살쯤에 강 건너 나동에 있는 서당으로 글을 배우러 다녔다.
그의 나이가 여남은 살이 되었을 즈음의 일이다.
형들과 같이 서당을 다니는데 서출이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고, 형을 형이라 불러 보지 못하는 처지였다. 어느 날은 홍수가 나서 강물이 크게 불어났다.
형들은 자기들을 아우인 범석에게 업고 건너라는 것이었다.
아직 나이 어린 몸이었으나 기골이 장대한 그는 큰 형부터 업어 건너기 시작했다.
그는 큰 형을 업고 강 복판에 이르러 버티고 섰다.
그리고 형 더러 "앞으로 아우(동생)라고 부를 거요, 안부를 거요. 아우라고 부르지 않는 다면 강물에 집어 던져 버리겠소,"
이에 겁에 질린 형은 앞으로 아우라고 부르마 했다. 다음형도 마찬가지로 다짐을 받아 냈다.
강을 건너 범석이 옷을 추스른 사이 형들이 먼저 당도하니 아버지가 아우 일을 물었다. 형들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내심 대견스러웠다.
그 뒤 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머리를 풀게 했는데 그 때도 형들로부터 다짐을 받아내고 상주노릇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의 습속은 서모의 죽음에는 적손이 복을 입지 않았던 때여서 그의 범상치 않은 행동은 돋보였던 것이다.
한범석은 1695년 무과에 급제하여 5도 병마절도사와 3도 통어사를 거쳐 부총관에 이르렀고, 한 때 해적을 탐정하는 일로 연경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이러한 그가 종명하니 하늘에서는 벌이 떨어졌으며, 그의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장례를 치르던 그의 부장이 말하기를
"명정에 8도병사를 써라."
그러니 그의 관이 땅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즉 7도명사를 역임하고 1도병사를 지냈는데 죽어서 1도병사를 더 사니 시체가 떨어졌다고 구전되나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