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독립운동가 재발굴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지만 여성을 조명하는 비중은 아직까지도 그리 크지 않다. 한국여성사연구의 태두 박용옥 전 성신여대 교수가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은 서방국가의 경우와는 달리 주로 항일민족독립운동의 추진과정 속에서 발전했다”며 “서구와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한국 여성운동의 초석이 3·1운동”이라는 연구를 내놓은 지 오래지만 3·1운동에 대한 여성사적 해석은 여전히 빈곤하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우리사회에 여권이 뿌리내리는 토양이 됐으며, 여학생들의 적극적 참여가 이뤄진 3·1운동을 경험하며 보통여성들도 주체적으로 교육받기를 갈망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태화여학교(성신여대 전신) 등이 탄생한다. 3·1운동에 참여한 간호사 한신광도 이곳에서 국내 모자보건사업을 첫 발걸음을 떼었다.
그는 1902년 진주 평안동에서 태어나 1917년 진주 광림여학교 고등과를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 때 17세의 나이로 애국청년당원으로 활동하던 진주 3·1운동의 지도자인 오빠 한규상 선생의 약혼녀인 박덕실 여사와 함께 광림여학교 교사로 있다가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다. 이 사건으로 2개월 동안 진주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다가 풀려나기도 하였다.
한신광은 서울 동대문 부인병원 간호부양성소(이화여대 간호학과 전신) 졸업 후 산파 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태화여자관 태화 진찰소 사회봉사부회 일원으로 가정방문을 통해 임산부와 어린아이를 위한 건강교육을 실시하는 등 모자보건사업을 적극 펼쳤다. 광제병원 간호사로 근무 중 전국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자 위생 강연자가 되었고, 1924년 1월 26일 정종명 등과 함께 조선간호부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이 되었다. 1925년 전조선여자웅변대회에서 한신광은 조선간호부협회를 대표해서 “간호자는 병자의 생사를 쥐고 있습니다. 간호자는 전문기술을 가진 간호부라야 됩니다. 사람이 병을 얻으면 세상만사가 귀찮지 않습니까. 하물며 보통병자도 이와 같거늘 사회적 병인은 누가 간호하여야 되겠습니까? 사회적 병인도 우리가 간호할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1925년 동경여자대학 재학 중 천용근 선생과 결혼하고 재동경여자청년동맹을 창립해 여성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활동하다가 2년만에 다시 귀국하여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에서 민족주의적 여성 운동에 가담했다. 근우회는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민족해방운동 조직으로 여성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인간으로서의 권리 찾기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9년 12월 전국에서 학생시위가 전개될 때 서울에서 학생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돼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석방되기도 하였다.
1930년 일제의 탄압으로 근우회가 해산된 후 1945년 오빠 한규상이 적십자 병원장이 되어 마산으로 가자 함께 내려가 마산시 부녀계장이 되고 1950년 5월 마산시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부녀사업과장 재직 시 피난민 수용소의 어린이와 부녀자를 모아 모자원을 설립하고 서울에서 조산원 개업 후 1970년 까지 조산원으로 활동 하였다. 대한조산사협회장 역임을 하였으며, 대한간호협회 보건간호사업 공로 표창장과 삼일동지회 태극반지를 받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신광은 근대 간호교육을 통해 전문 직업을 갖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으며, 지식인으로서 사회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일제강점기 암혹한 시기 뜨거운 민족의식과 기개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구국의 일념으로 만세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우리는 항일 여성독립운동가 한신광, 그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자랑스러운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정방문에 나선 로젠버거와 한신광 (1924년)
1920년대 태화여자관 선교사들과 직원들의 단체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