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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악

김수악(金壽岳, 1926~2009)

교방예술의 혼과 소리, 진주권번 출신의 마지막 예인

“그가 구음(口音, 입장단)을 하면 헛간에 도리깨가 춤을 추고 목석도 들썩인다”

진주 최고의 예기로 섬세하고 애절한 춤과 소리의 매력을 구사하던 김수악은 예술성 높은 검무와 굿거리춤의 명인이었을 뿐 아니라 관객들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구음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구음은 본디 악기를 가르칠 때 악보를 대신해 입으로 선율을 내는 소리로서, 춤판에서는 이에 맞춰 춤을 추는 배경이 된다. 소리꾼들은 ‘구음만큼은 진주 예기 김수악이 강산의 제일’이라 꼽았고, 그녀가 구음을 하면 ‘헛간의 도리깨도 춤을 춘다’고들 칭송했다.
'강산(江山) 제일의 춤꾼'으로 불리며 진주검무로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에 지정된 “춘당 김수악”을 당대의 소리꾼들은 이렇게 평했다.

국악을 사랑한 한량 아버지, 진주 권번의 가야금 선생이던 숙부, 하동에서 임방울 등 소리꾼을 키우던 외숙 유성준, 가야금 명인이던 언니 김취란 등 김수악은 타고난 예술 유전자에다 어릴 적부터 일상으로 국악을 접한 김수악은 일곱 살에 진주권번(券番)에 입적한 것을 계기로 춤꾼의 길을 걷게 된다 .권번 선생인 김옥민 씨를 통해 춤의 기본을 익히며 한성준(韓成俊)에게 승무를 배웠고, 김록주에게 소고무를 물려받았다. 진주 검무는 12세 때 최완자(崔完子)를 만나 굿거리춤, 입춤과 함께 배웠다.
타고난 재능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을 날렸고, 그의 나이 30세인 1955년 진주에 경상남도 최초로 민속예술학원을 개설하고 후진양성에 헌신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1967년 진주검무(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초대 예능보유자, 1997년 진주 교방굿거리춤(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국 1910년 경술국치로 장악원과 관기제도가 폐지되고 지역의 교방(敎坊)도 해체되지만 ‘기생조합’을 조직해 전통을 이어가던 예기들은 1938년 본격적으로 예기 권번을 창립했다. 아홉 살 먹은 김수악도 ‘봉래의’, ‘선유락’, ‘포구락’, ‘무고’, ‘검무’, ‘항장무’, ‘연화대무’, ‘아박무’, ‘육화대’, ‘헌선도’, ‘향발무’, ‘황창무’, ‘처용무’ 등의 정재와 ‘쌍승무’, ‘굿거리춤’, ‘한량무’ 등 민속춤을 가르치던 진주 권번에 들어가 교방예술을 보고 익히며 궁중무희 출신 최순이로부터 시조창과 함께 입춤과 소고춤, 굿거리춤과 검무를 배웠다. 진주교방은 판소리보다 가곡과 시조창, 가사, 잡요, 단가 등 상류층에서 즐기던 소리들을 교습했으며, 인근에 탁월한 소리꾼이 많아 그녀는 정정렬, 유성준, 이선유에게 판소리 다섯마당을 배우고, 전두영에게 구음을, 이순근, 김종기에게 가야금과 아쟁을 각각 배우며 말 그대로 종합예술인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남강물이 말라도 여란이(김수악의 예명) 주머니 돈은 마르지 않는다”는 소문이 날 만큼 진주를 대표하는 기생으로 인기를 누렸다.

교방굿거리춤, 논개살풀이 춤은 논개의 얼이 담긴 춤으로 논개가 의암바위에서 추었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진주지역에서 추어졌던 살풀이춤을 토대로 복원과 창작을 통하여 만들어진 춤으로 500년 전부터 내려오고 있는데 김수악 선생이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천상의 소리 구음, 구음은 입과 코로 나오는 절묘한 소리를 말하는데 김수악 구음이면 헛간에 서 있는 도리깨도 춤을 추고 목석도 들썩인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을 딛고 일어선 교방굿거리춤은 한국무용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춤으로 우리 민족 정서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경남 무형문화재 진주 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였던 춘당 김수악 선생, 춤과 구음, 장구, 판소리, 가야금 병창 등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실력을 지녔던 선생의 발자취를 엿볼 수 시간을 허락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논개살풀이춤 책까지 선물 받고 돌아온 하루였습니다. “예술인이 되려면 마음, 정신, 공력, 멋, 혼이 혼연일체가 되어야한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으로 정신을 키워야한다. 그런 다음 힘들여 공을 들이면 멋이나오고, 그 멋이 경륜이 쌓이다 보면 혼이 뭍어 나온다 라고 가르쳤다. 2009년 3월 85세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그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교방문화의 마지막 예인으로 불리며 위대한 예술인 훌륭한 스승으로 추앙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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