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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리(丹牧里)

조선조 전기 때 진주목 북면 사죽리(沙竹里) 단지동(丹池洞)이다. 구한말 때까지는 사죽면(沙竹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아동(月牙洞) 단동(丹洞), 미천면, 정성동(正星洞), 호동(孤洞) 일부를 병합하고, 단목리(丹牧里)라 하여 대곡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상 단목(丹牧), 지내(池內), 신흥(新興)마을을 통털어 단목리(丹牧里)라 한다. 북쪽은 유곡리, 동남쪽은 금산면, 서남쪽은 월아리, 서쪽은 미천면 정성, 호동 등을 접하고 있다.

단목(丹牧)

옛날에는 관동(?洞), 단동(丹洞), 단지동(丹池洞)이라 하였으나 일제(日帝) 때, 붉은 목단(牧丹;모란꽃)이 많다하여 단목(丹牧)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목단이 없다. 설에 의하면 예부터 우리 선조는 의를 먼저 생각하였다. 의는 곧은 마음이란 뜻으로 의(義)를 숭상하는 마을이라 하여 단동(丹洞)이라 하였고, 단지동(丹池洞)이라 한 것은 동리 안에 붉은 연못이 있어 단지동이라 칭했다 한다. 단목은 과거에 합격한 선조가 깃발을 앞세우고 마걸둥천 연못가에 내려 저녁노을 햇빛이 연못물 위에 그림자가 붉게 비이고 말 또한 물을 먹으니 이로 인해 붉을 단(丹)자와 먹일목(牧)자를 따서 단목이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동네터, 숲(다리목), 아랫골, 누루골 등을 단목마을이라고 한다.

동네터

단목 중심지에 있는 마을이다.

다리목

옛날 진주 의령간의 큰 대로로서 큰 다리가 있었다.

다리목, 단목마을 입구에 있다. 수 백년 된 물버들 나무가 오랜 세월을 말해 주듯이 서있고 나무에는 혹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수천평에 달하였는데 1921년 진주-의령간 지방도가 개통되면서 숲이 내외로 분활되었다. 안숲은 1952년에 단목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사라지고 본 학교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고목 물버들 10여 그루가 현재 보존되고 있다. 바깥 숲은 1969년 경지정리로 인해 농지로 변해 흔적을 감추었다. 또 옛날에는 이곳에 단구정(丹邱亭)이 있었다. 지금은 단목국민학교 교정이 되었다.

가장골

단목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관동(?洞)

단목서 서남쪽 고개를 넘어 있는 땀. 아주 옛날 추장(酋長)이 있었던 곳이다.

자래등(龜嶝)

관동옆에 있는 등산(嶝山). 옛날 관동에 삭녕최씨(朔寧崔氏)가 살고 있었는데 자래목에 웅기 굴을 파고 불을 살랐더니 최씨가 망했다고 한다.

제애굴

기와굴, 관동 입구 좌측도로 옆에 기와굴이 있었으나 기승자가 없어 1950년에 사라지고 1953년에 이곳에 사천공군부대 파견대가 주둔하여 단목들녁 남쪽 남강하천부지를 중심한 사격장을 설치하여 매일 비행사격으로 농사일에도 제한을 받는가 하면 앞도로를 통과하는 모든 차량도 통제를 함으로 갖가지 민원이 발생하여 56녀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현재는 퇴비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단목터널

대곡면 전안전수리 시설 일환으로 단목배수물을 이용하기 위하여 단목쪽에서 산밑으로 굴을 뚫어 유곡리 원앞에 이른다. 배수장이 시설되고 1984년에 준공되어 길이는 938m로 단목터널1호라고 부른다.

가라골

단목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구봉날

서남쪽에 있는 땀이다. 지금은 새마을이라고 한다.

대사골

서남쪽에 있는 땀이다.

떡곡

단목 서북쪽 신흥으로 가는 고개 터이다.

변거터

단목서 북쪽 안골짝 땀이다.

너루골

동네터 북쪽에 있는 땀이다.

영당(影堂)

영을 모시는 곳이다.

동쪽빗달

동쪽에 있는 동네터이다.

창고

대곡농협 창고이다.

마걸둑

마구둑, 단목 동남쪽에 있다. 말을 매던 곳이다.

마걸둑천

마구둑천. 지내에서 흐르는 또랑물과 느릿골에서 흐르는 물이 만나는 지점인데 넓은 구도가 있어 옛날 말을 매던 곳이다. 이 도로가 현재 단목초등학교 화단을 따라 지방도와 연결된다.

단구정(丹邱亭)

동쪽에 있으며 옛날 노인들이 놀던 터이다.

하마비(下馬碑)

당구정 앞에 있음. 옛날 단목마을 앞을 지날 때 임금의 어필과 여를 경모재에 모시고 있다하여 하마(下馬)하도록 세운 비이다.

쌍학골(雙鶴谷)

단목 동쪽 산너머 유곡으로 가는 골짜기이다. 지금은 준공업지역으로서 공장이 5개 건립되어 있다.

벼랑바위

벼락바위라 하며 벼랑 끝에 있다하여 칭하여진다. 수근이 좋으며 쌍학골이며 단목 휴게소에서 동북쪽이다.

공동묘지

마을공동묘지이다.

단추뱅이(丹秋坊)

단목마을 앞에 있는 덤이다. 단목마을 동남쪽에 있는 깍아 세운듯한 절벽이며 밑에는 물이 흐르고 수심이 깊어 쏘(沼)라고 하였다.

삼밭(大麻田)김이쏘

단목들에 삼을 많이 재배하였다. 삼밭옆에 쏘가 있다하여 칭하고 물이 차갑고 깊어 수영에 미숙한 사람은 위험한 곳이다. 현 위치는 중앙도로에서 남쪽 4필지 지점이다.

단목들

제방축조는 1968년에 길이 약 2600m, 넓이 250정보로 옛날에는 가을에 파종하여 여름에 수확하는 대맥, 소맥, 장맥, 중 주종이 대맥이고 여름 작물은 산도, 콩, 조, 수수, 땅콩 등인데 비가 50mm만 와도 거의 침수되어 빈곤을 면하기 어려웠다. 1969년에 경지정리와 더불어 비닐하우스단지로 변하여 소득작목도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다.

지내(池內)

못안. 단목마을 북쪽 골 안에 있는 마을이다. 못안, 당사골, 방아골, 해기터 등을 지내(池內)라 하는데 옛날 큰 못이 있었다 하여 못안이라 한다. 지금도 작은 못이 있다.

못안

못터(池內)를 말한다. 옛날부터 마을내에 못이 있다하여 못안이라 한다. 위치는 마을 중앙이며 면적은 십여평정도 인데 마을 보배라하여 93년도에 축대, 개수하였다.

해기터(鶴基)

학터. 못안 안골짜기에 있음. 옛날 진양하씨단지공종가(晋陽河氏丹池公宗家)의 터를 만들 때 지사(地師, 地官)가 그만 파도록 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고 더 파니 학 두 마리가 날아갔다고 함. 그 학 두 마리가 지내 동쪽 산 넘어 골짜기에 날아 앉았다고 하여 쌍학곡(雙鶴谷)이라 한다.

서재동

해기터 북동으로 오르는 등을 말한다. 옛날 이곳에 서재가 있었다.

해기샘

해기터 옆에 있는 샘인데 수근이 좋다.

방앗골

못안 북쪽 천황산 밑에 있는 골짜기이다.

천황산(天皇山)

방앗골 뒤 못둑에서 북쪽에 있는 산이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이고 먼당에 오랜 참나무가 있었는데 70년 초에 고사하고 현재는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동산이다.

광풍대(光風臺)

방아골에서 옛길따라 재실로 가는 길 옆에 큰 바위가 튀어나와 있다. 바위 위에는 광풍대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바위 밑바닥 부근이 암석으로 되어 있으며 서재 공부하는 선비들이 길을 오르내리면서 바위 위에서 제월광풍을 읊으면서 즐겨 찾던 곳이다. 지금은 그 위로 농로가 포장되어 앞면만 볼수 있다.(제실은 제월정임)

도풍재

천황산 동쪽 산에 있는 곳으로 방아골에서 북창으로 가는 재이다. 옛날에는 시장, 학교, 면사무소 등으로 가는 통로인데 지금은 길이 흔적도 없다.

단사골(丹沙谷)

못안 남쪽에 있는 땀이다.

들돌골

단사골 앞 도로변 주위를 말하는데 예부터 들돌이 있어 옛날 장사들이 돌을 들어 힘자랑을 하였다고 한다. 이 들돌은 마을회관 정원에 보관되어 있다.

당사

큰 돌들이 있다. 옛날 장사들이 돌을 들어 힘 자랑을 하였다고 한다.

동편

못안 동쪽에 있는 땀이다.

구시곡(拘時谷)

구소골(九牛谷)이라고도 한다. 못안 북쪽 산 너머에 있는 골짜기이다.

구소골(九牛谷)

산지세(山地勢)가 소 아홉 마리가 죽을 먹는 형태(形態)라고 한다.

오모갈(五毛佳谷)

구시골 중간에 있는 골짜기이다.

나밭디고개

오모갈에서 대포로 가는 고개이다.

검은작살

천황산 북쪽 중간 터이다.

큰또랑과 반석거리

방아골에 위치하며 비가오면 천황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도풍재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지는 곳인데 자연으로 생긴 압석이 웅덩이처럼 파져 있어 동리 빨래터로 유명하였고, 길이가 십여미터나 되고 그 위로 길이 되어 있어 반석거리이다. 60년대 복개공사로 지금은 반석 위에서 대부분 시멘트 포장이 되어 흔적을 감추었다.

신흥(新興)

샛터. 아랫마을, 웃마을, 덕고개(떡곡), 홍용 땀을 신흥마을이라 한다.

소로골(小鹿谷)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상송원(上松院)

소록골이라고도 한다.

주루골

신흥 남쪽에서 월아리로 가는 골이다.

게기골(曲溪谷)

샛터 동쪽 골짜기, 구계골이다.

영당골

샛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영당이 있었다고 한다.

세인골

성인곡(聖人谷), 시인곡, 샛터 남쪽 골짜기. 임란때 하씨 형제 즉, 단주공휘 변(丹洲公諱?)과 단지공 휘 협(丹池公諱?)이 이 골짜기에 피신하였다가 형은 잡혔다. 형은 잡혀가면서 덤불에 숨어 있는 동생에게 동생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덤부라 덤부라 잘있거라 또다시 만날때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눈물로 떠났다고 한다.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이 세인골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형은 21년 만에 환국하였다.

다래골(多禮谷)

샛터 남쪽 월아리 경계선에 있는 골짜기이다.

용사골(龍巳谷)

샛터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큰용사골

용사골 옆에 있는 골짜기이다.

흥용(興龍)

샛터 서쪽 골짜기에 있는 땀이다.

흥용골(興龍谷)

흥용앞에 있는 골이다.

개밭골

샛터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비선골

개밭골 건너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가장골(假葬谷)

샛터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애장터이다.

감나무골

가장골 건너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큰댁골

미천면 호동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장고개

신흥마을에서 미천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해마무골(白木谷)

샛터 북쪽 고개 너머에 있는 골짜기이다.

대평지(大平地)

샛터 북쪽에 있는 산이다.

진동

대평지 등선이다.

비용상천(飛龍上天)

흥용 뒷산이다.

황새등(鶴嶝)

흥용 앞에 있는 산. 학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용사골먼당

아랫마을 뒷산이다.

뒷재

웃마을 뒷산이다.

너러터

신흥 북쪽 미천멀당으로 가는 고개이다.

댓골

흥용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남밭들

미천면 호동 앞 건너편에 있는 들이다.

흥용재

흥용에서 샛터로 가는 고개(測量標準基點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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