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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진주 Today
현재 시각 AM 06:11 2019/12/08 Sun

소문리

1914년, 진주군 문산면 일동(一洞), 이동(二洞), 조동면 갈전동(槽洞面葛田洞), 속사동(束沙洞) 각 일부로서 소문리(蘇文里)라 하였다.

관정(官井)

지금의 성당(聖堂)터는 본시 관가였다고 한다. 그 안에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관정 이라고 하였다 한다.

성당골

1905년경에 천주교 문산교회가 설립되고 포교활동은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성당은 1932년에 건립된 것으로 웅장하고 건축양식 또한 서구식이다. 이후부터 성당골이라 불려지고 있다.

장터

교통수단이 발전되기 전인 옛날에 문산 장날은 금산면, 금곡면, 진성면, 일반성면, 정촌면 등의 중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상당히 성황을 이루었던 곳으로서 문산 「장터」라서 생긴 이름이다. 문산 중앙지를 연상케 한다.

뭇둑골

옛날에 못이 있었던 곳이다. 못은 매립되어 주거지로 변하고 못둑만 남은 것이 지금의 골목길이며 못둑골이라 이름되고 있다.

불매골

보통 골목길은 외길이므로 들어간 곳을 다시 되돌아 나올수 있으나 이 골목은 수개소의 골목과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골목으로도 들락날락할 수 있다. 또 뒷산에서 내려다 보면 불매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악장골

이 마을은 지형이 평탄하여 살기좋은 마을이나 이 골은 산길과 같이 길고 험한 골이라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쪽지골

옛날 법륜리에 족지동(足之洞)이란 골목이 있었으며 사람다리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문산초등학교 옆 골목이며 문산에서 제일 긴 골목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동네

두 번째 정착된 동네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소문리가 해당되지만 실제로는 남동마을을「이동네」라고 한다.

참나무지이

진목정(眞木亭)의 방언으로 객사(客舍)를 의미하며 근처에 도토리나무가 많다하여 객사(客舍)를 진목정이라 했다. 그 객사가 없어지고난 뒤에 저절로 길이 된 것 같고 이곳에 찰방송덕비(察訪頌德碑)가 서 있다.

놀싯고

문산초등학교 뒷편 고개이다. 금산으로 가는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노루가 들끓어 붙여진 이름으로 노루실고개란 말이 줄여진 것 같다.

재앙터(災殃)

장승을 모시면 온갖 재앙을 물리쳐 준다는 전설이 있고 또 동민들이 모여 모든 재앙을 미리 막기 위하여 정성들여 동제(洞祭)를 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동정(東井)·서정(西井)·남동(藍洞)

모두 연결된 한 마을이다.

남서(藍西)

특별한 뜻은 없고 1979년 8월 1일 리동 개편으로 남동마을을 2개마을로 나누면서 남동의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남서」마을이라 하였다.

우곡산(牛谷山)

우곡산신을 모신 곳이다. 방언인「욱시골」이 더 널리 알려지고 있다.

건너숲

진양농산 뒷편에 숲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숲이 없다.

용두산(龍頭山)

아주 옛날 문산에 한 신선(神仙)이 살았다. 신선은 문산 사람들을 어떻게 잘 살게할까 궁리를 하다가 용을 타고 용궁(龍宮)의 용왕(龍王)을 만나러 나셨다. 그날 새벽에는 부슬비가 내렸다. 신선은 용머리에 올라앉아 이제 막 하늘을 오르려 하는데 새벽 일찍 빨래를 나온 한 아낙네(처녀라고도 함)가 있었다. 아낙네는 빨래를 하다말고 잠시 하늘을 쳐다보니 백발노인이 용머리에 올라앉아 막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깜짝놀란 아낙네는 엉겹결에 「어떤 영감이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용이 놀라 하늘을 오르다 말고 머리를 땅에 처박고 말았는데 순식간에 용의 형상은 온데간데 없이 하나의 산이 되어버렸고 그 허리는 아낙네가 빨래하던 자리에 떨어지더니만 잘려버리고 말았다. 신선은 어이가 없는듯 「아뿔사 용머리가 10리만 더 뻗었더라도 문산은 참으로 큰 고을이 되었을 것인데······」하며 탄식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원래 용두산은 용허리로 안아 10리 밖으로 뻗어야 큰 고을이 된다고 하였고, 또 문산은 예로부터 신선이 놀던 곳이라 남산에는 언제나 학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앞으로는 금곡(金谷)을 내려다보고 뒤로는 금산(琴山)과 더불어 사는 고을로 되었을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또 하나 용두산의 다른 전설은 용이 산을 끌고오는 것을 빨래하는 아낙네가 그 광경을 보고 빨래방망이로 빨랫돌을 힘껏 두드리며 「용이 산을 끌고 온다」고 큰 소리를 치는 바람에 놀란 용은 산을 그자리에 놓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한다. 만약 그런 일이 없이 남산과 연결만 되었더라면 수도(首都)가 되었을 자리라는 전설도 있다. 또한 용두산 머리의 바위 생김새와 남산 머리의 바위 생김새가 산을 둘로 갈라 놓은 것처럼 흡사하여 그 용두산과 남산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머리에 자라고 있는 초목도 비슷하다.

객사터(客舍)

객사(客舍)는 조선왕조의 원(院)으로 일종의 국립여관이며 전국에 1,200개소로 역(驛)과 같이 대·중·소로(大中 小路)를 설치하는 것과 인가(人家)가 희소(稀少)한 곳에 행려(行旅)의 편의를 제공(提供)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등 두 종류가 있었다. 건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소문리 문산초등학교 옆 「참나무지이」가 객사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뽁당마당

사평(사들)들로 가는 농로 끝에 위치한 타작마당이다. 위쪽 언덕은 가축(소)이 죽으면 묻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재실마당

벼, 보리 타작마당이다. 지금은 고속도로 개설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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