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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성리(吉星里)

1914년, 진주군 가수개면 길성동(可樹介面吉星洞), 둔두동(屯頭洞), 계룡동(溪龍洞) 각 일부로서 길성리(吉星里)라 하였다. 이 마을의 행정구역은 수성, 평동, 계룡으로 분리한다. 옛 전설에 의하면 칠성동이 있는데 이 마을은 양달과 응달로 되어 있고 들판 곳곳에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바위 돌이 일곱 개가 있었다고 하여 칠성곡이라고 하였다. 길성이란 뜻도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 지금은 그 돌이 오랜 세월에 흘러 근방에 묻혀 버려 잘 보이지 않던 중 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농로 개설 때 몇 개의 돌이 발굴되어 증표가 되었다. 집단 거주 성씨는 진양 강씨와 남양 홍씨이다.

수성(壽星)

수성마을

돈두동은 지금 수성이라 부르는데 칠성과 사이에 능선을 경계로 하여 양 동으로 분리되었다가 이후 조정에 의해 통합되면서 돈두동과 칠성동을 수성이라고 한다.

평동(坪洞)

평동마을

지금은 평동이라 부르고 있으나 300년 전 진주강씨가 입촌 당시 많은 꿀벌이 안산에서 떼 지어 드나드는 형세를 보고 들 복판에 집을 짓고 동명을 벌마을 이라고 하였다. 마을 중앙에 영봉재란 진주강씨의 재실이 있다.

계룡(溪龍)

전설에 의하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 하여 계룡이라고 하였다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천둥·번개가 천지를 진동, 마을 사람들은 놀라 우왕좌왕하다 나무 밑에 은신하던 중 건너편 삼밭골에서 기다란 먹구름이 직선으로 계곡물과 한참 연결되더니 비가 그치게 되었다. 그 후 삼밭골 등에 가보니 큰 구렁이의 허물이 토골과 삼밭골 등에 걸쳐 있어 용이 승천한 것이라고 전한다. 마을의 주된 성씨는 진주강씨, 삭녕최씨, 진해김씨, 진양정씨 이다. < 평동마을 >

칠성골

마을 주위에 크기가 같고 모양이 같은 바위가 일곱 개가 있다고 하여 칠성골이라 한다. 마을의 주된 성씨는 진주강씨, 남양홍씨 등이다.

미륵골

돈두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여기에 큰 절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절은 없고 미륵만 현존하고 있다.

화밭골

벌마을 앞산을 화밭골이라 한다. 그 옆에 벌집을 짓게 하여 그 명칭을 단상이라 하였다.

토골

계룡 동북쪽의 골짜기이다. 골이 깊다하여 토골이라고 한다.

삼밭골

토골 밑에 있는 적은 골이다. 이 일대에는 대마가 잘된다고 하여 삼밭골이라 한다.

뿔당재

수성 남쪽에서 고성군 개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옛날 불당이 있었다고 한다.

접골

수성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는 옹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갈뱅이집터

미륵골 밑 어느 가정에서 갈뱅이가 태어나는 순간 지나가는 도사가 말하기를 때가 맞지 않으니 에 큰 도적이 될 곳이라고 하여 방비로 시주한 많은 양의 식량을 갈뱅이 어머니 머리에 이게 하면 갈뱅이가 도망 갈 것이라고 하였다 하여 중의 말대로 실시한 결과 갈뱅이가 도망갔다고 한다.

진산초등학교

1935년 3월 20일 이반성면 가산리 824번지에서 가산 간이학교로 인가, 1943년 7월 20일부로 이반성국민학교 분교로 승격,1947년 2월 28일부로 진산국민학교로 승격, 1979년 3월 30일에 가산리 824번지에서 길성리 184번지로 이전되었다. 현재 폐교되어 그 장소에 경남꿈키움학교로 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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