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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AM 02:10 2019/11/13 Wed

갈전리(葛田里)

본래 진주군. 조동면의 지역으로서 고려말 우왕 12년(1386)경부터 있던 마을이다. 백마가 가던 중 목이 말라 거 마치(去馬峙)에서 쉬어 물을 마시고 갔는데 그 형국이 구 시 같다 하여 조도면이라 이름 지은 곳이며 또 칡이 많으므로 치어라 또는 갈 전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조동면 호암동(槽洞面虎岩洞)·갈전동(葛田洞)·속 사동(束沙洞) 각 일부로서 갈전리(葛田里)라 해서 금산면의 법정이동의 하나이다.

청동 당시에는 초계변씨(草溪卞氏), 고령신씨(高靈申氏), 창녕성씨(昌寧成氏) 등이 정착하였는데 지금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장흥 고씨(長興高氏),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대성으로 살고 있다. 1110여 년의 역사 깊은 청곡서(靑谷社)와 성은 암(聖隱庵)이 유명하다.

신기(新基)

갈전리의 소리로서 전에는 초겨울 면의 한 마을이었다. 초겨울마을 동쪽에 새로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신기라고 하였다.

거마재

신기마을 북쪽에서 월아마을로 가는 고개이다. 형국이 말이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 이다.

방아골

북쪽에 있는 골이다. 건너편 산 모양이 나비가 꽃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유래된 것이다.

아구재

월아 정새미 뒤에서 신기 위쪽을 지나 문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골 모양이 범모양으로 생긴 데서 유래된 것이다.

아구재못

아구재 밑에 있는 못이다.

웃들

신기 위쪽에 있는 들이다.

장군대

월아산 두 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금호지 동쪽에 있는 해발 482m의 진양의 명산이다. 임진왜란 때 벌레용 장군 김덕령(忠 勇將 軍 金德齡)의 진토가 있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산 중턱에는 청곡서, 성은 암, 두 방사가 있다.

청곡사(靑谷寺)

월아산 서쪽 골짜기에 있다. 깊숙한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절이다. 서기 879(신라 헌강왕 5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 도선이 월아산 서쪽 숲을 돌아드니 많은 학이 앉아 있으므로 이곳이 절터로서 좋은 자리라 하여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 고려말 우왕 때 상 총(尙聰)이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전소한 것을 광해군 때 예행(戒行) 극명(克明) 양 대사가 3 창 하였으며 조선조 말에 포구(包雨)대사가 사찰 전체를 중수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대웅전은 1612년(광해군 4년)에 재건한 것으로 도지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입구에는 방학 교(訪鶴橋), 황학루(喚鶴樓)가 있다. 그밖에 도지정문화재 제5호인 삼층석탑과 제261호인 괘불 및 괘불 함, 그리고 도지정문화재자료 제107호인 업경전 등이 있다.

성은암(聖隱庵)

청곡서 위쪽 산 중턱에 있는 암자이다.

방터

청곡서 뒷산에 있다.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방 터라고 한다.

조동(槽洞)

조선조 후기 초겨울 면의 근기가 되는 갈전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다. 마을 지형이 말고 시(구유) 형국이라 하여 이름 지은 곳이다.

조동숲

조동의 서쪽에 있는 숲이다. 1588년(선조 18년)경에 초겨울마을 방풍을 위하여 조성한 것이다. 2,000평 규모에 서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이백여 그루의 아름드리 수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검단이(劍斷)

조동 남쪽에 있는 골이다. 골 형국이 칼끝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돌말끝

조동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민의 무사태평을 위하여 지신을 달랜 줄 돌이 일곱 개가 있는데 일명 마구 할머니 줄 바위(고인돌)라 한다.

동네새미

조동 중앙에 있다. 동민의 공동우물이다.

못안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마삼못 안쪽에 있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숲안들

조동숲 안쪽에 있는 작은 들이다.

왕당골

조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조동밭

조동수 밖에 있는 밭들이다. 밭에서 돌도끼, 돌솥, 화살 등이 돌 뚜껑 밑에서 나왔다고 한다.

중마을(中村)

조동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갈전리의 중앙쯤 된다고 하여 중마을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암호형상(岩虎形象)이라 하여 호암동(虎岩洞)이라고도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세도가 좋은 홍씨(洪氏)가 청곡서와 사이가 안 좋아 중이 홍씨 문전을 지나다닐 수 없어 산을 넘었다 하여 중 마을이라 했다 한다.

중말골

중마을 위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중말들

중마을에 있는 들이다.

중말못

중마을에 있는 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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