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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리(長沙里)

1914년, 대여촌면 가방동, 사동, 금산면 중촌동 각 일부로서 장사리라 하였다. 월아산 아래 안심방(安心坊)으로부터 집현면 덕오리 경계까지 길게 연한 금산면의 삼분지 일을 점한 가장 큰 리동이며 면사무소, 진주경찰서 도동지구대 금산치안센터, 농협, 우체국 등 각 기관이 소재한 민행정 중심지역이다. 삼거리로서 상가, 개량주택, 아파트 등이 밀집하여 면의 요충지대로서 택지개발 등 앞으로 무한히 발전될 지역이다.

상의(上儀)

금호의 큰들 위쪽에 있다. 신당산 서쪽 남강가에 농사짓기 편리한 평탄한 마을이다. 본래 덕의리의 일부였다. 덕평의 위쪽에 있었다고 하여 상의이다. 전하여 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관한 문헌은 없으며 대성(大姓)이 없는 집성마을이다.

덕의(德儀)

금호의 큰들 가운데 있는 집단마을이다. 큰들 가운데 새로 생긴 마을이다. 덕의를 상·하로 분 동하면서 상덕의라 하고 하덕의는 득의라 하였다. 남강댐 축조 이전에는 홍수손해를 입었으나 댐 준공과 금호 제 완성으로 홍수피해 염려가 없는 영농 안전지대로서 녹색혁명 당시 통일벼 재배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고등채소, 시설원예가 잘되는 마을이다. 창동 당시에는 농막 형태의 마을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현대식 개량 농촌이며 70년대 새마을 사업이 잘된 마을이다. 진양 정씨가 대성을 이루며 대평면 수몰지구 이주민 창원 황씨들이 이주하여있다.

금호제방

서북쪽에 있는 제방이다. 남강에서 유입되는 홍수를 막기 위하여 1960년대에 축조되었다. 금호지, 금호 양수장의 물 댈 면적 중 가장 큰 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둑이기에 금호 제방이라 한다.

찬물새미

서쪽에 있었다. 아주 물이 차고 수질이 좋은 샘이었다. 금호 제방을 만들 때 없어졌다고 한다.

뒷들

뒤에 있는 들이다. 남강의 하천부지가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불하된 개인 땅이다. 남강 범람 때 침전된 모래참흙으로 시설 하우스가 잘되는 적지이다.

덕정(德亭)

마을 뒷산 고등산(高嶝山)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금호 큰 들을 눈앞에 바라보는 경관이 아주 좋은 마을이다. 본래 대여 촌의 지역이며 금산면의 행정리 동의 하나이다. 마을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다하여 덕정이라 하였다 한다. 1932년 면사무소가 현위치로 이전되기 전에는 이 마을 장사리 663번지에 있었으며 진양 강씨가 대성이다.

가장골

북쪽 고등산 골짜기이다. 옛날 이곳에서 시신을 가장(假葬)했다고 지은 이름이다.

몰매등

가장골에 있는 등성이이다. 임진왜란 때 장수의 말을 묻었다고 한다.

현지(玄池)

마을 위쪽에 못이 있는데 못의 생김새가 큰 가마솥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을 가매 못이라고 하다가 덕정에서 분동되어 현지라 하였다. 택지조성을로 아파트 건축 등대사마을과 같이 개발이 한창이다.

매산이밭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비선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물뱅이

서쪽에 있는 들이다. 가매못의 물을 받아 농사지었다고 하여 이름 지은 곳이다.

제사고개

동쪽에서 사동마을로 가는 고개이다.

통새미

물뱅이 밑에 있는 샘이다.

식림산

뒤쪽에 있는 산이다.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조림한 산이다.

대사(大寺)

1932년 덕정에서 면사무소가 이전한 곳이다. 면사무소, 농협, 경찰지서, 우체국,농촌지도소 지소 등 각 기관 및 상가가 밀접한 면의 중심지이다.옛날 큰절(大寺)이 있었다하여 한 절이라고 한다. 절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다고 하며 1970년대에 대명암이란 암자가 지어져 현존하고 있다. 금호못 서쪽 산기슭에는 1935년(을해년)에 건축한 금호정(金湖亭)이 있고 그앞에는 조선조 퇴계(退溪)선생의 과청곡사시(過靑谷寺詩)가 새겨진 비가 있다. 그앞 금호못 둑에도 퇴계선생원운(退溪先生原韻)이 비석이 있다.

삼거리

면사무소 서쪽 약 100m 지점에 있다. 가방리, 용아리, 진주방면으로 가는 길이 합쳐진 곳으로 교통 요충지대이며 상가지대이다.

옹짐고개

삼거리에서 가방리 방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옛날 이곳에서 옹기를 구웠다고 한다.

사동(沙洞)

조선조 후기 대여촌면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산면에 편입된 행정리동이다. 월아산 무제봉(일명 국사봉)에서 서북쪽으로 휘어잡아 돌면서 못을 이룬 것이 금호지이다. 그못 북동쪽 안에 있는 마을이다. 무제봉 통사 바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형국이 흡사 가래 삽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삽골, 삿골로 불리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진양정씨가 대성으로 살고 있다. 창동 때에는 경주김씨가 선주(先住)한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창동때심은 것으로 추측되는 둘레 5m가량의 모과나무가 1970년대까지 있었으나 그 후 부산으로 이식되었다 한다.

못안

금호못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수사 정은부 가 출생했고 또 살던 곳이다. 1970년대 마을구조 개선사업으로 정비되었다.

불당골

안심 방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절이 있어 불당골이라고 한다.

암심방

월아산 서북쪽 산아래 있는 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안심하고 피난할 수 있었다 하여 안심 방이며, 한번 들어오면 그 안에서 안심하고 눌러앉아 살았다 하여 앉음방이라고도 한다. 아산재(牙山齋)가 있으며 금산면의 가장 오지이다. 단양장씨가 5호 살고 있다.

합제곡(合濟谷)

사동 동쪽 고개 넘어 있는 오지마을이다. 대곡면 덕곡으로 건너는 나루터가 있어 그 목을 합제골이라 한다.

모과골

사동 안골에 있는 골짜기이다. 창동 당시 모과나무를 심었다고 하여 전해진다.

양씨밭골

옛날 양씨가 살았다는 골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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