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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리(龍牙里)

본래 진주군 대여촌면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대여촌면 용심동(代如村面龍심洞), 금산면 월아동(今山面月牙洞), 중촌동(中村洞) 일부로서 용아리(龍牙里)라 하였다. 하동정씨(河東鄭氏), 창녕성씨(昌寧成氏), 진양하씨(晋陽河氏), 진양강씨(晋陽姜氏) 등이 대성이다. 대어촌면 용심동의 용(龍)자와 금산면의 월아동의 아(牙)자를 따서 용아(龍牙)라고 하였다.

용심(龍심)

본래 진주군의 대어촌면의 지역이다. 비룡심수(飛龍심水)형국(形局)의 크고 깊은 못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조 후기(1905년)이전부터 마을이 있던 곳이다. 하동정씨, 창녕성씨, 진양하씨, 진양강씨 등이 주로 살고 있으며 6개 자연마을이 산재되어 있다. 특히 월아산 두 봉우리가 금호 지에 비친 모양은 한 폭의 그림 같다.

가는골

용심 동쪽에 있다. 아주 가는 골짜기이다.

물뫼등

임진왜란 때 충용장군 김덕령(忠勇將軍 金德齡)이 월아산에 목책성(木柵城)을 쌓고 방어할 때 장군의 말이 죽어서 묻은 말 무덤이다. 이 말 무덤은 지금도 현존하며 이를 물 뫼 등이라고 한다.

금호지(琴湖地)

용심 서북쪽에 있는 약 23정보 되는 큰 못이다. 신라 시대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축조한 것으로서 한 눈으로는 못 전체의 관망이 불가한 형상이다. 주위의 연장(延長)이 5㎞, 평균 수심이 5.5m, 250정보의 몽리 능력이 있다. 황룡과 흑룡이 승천을 겨루다가 황룡은 승천하고 흑룡은 도사가 던진 칼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꽁오등

용심 함곡(函谷)의 중앙에 뻗어진 산이다. 꿩이 날아가는 형국이라 한다.

매봉재

함곡 북쪽에 있다.

독서골

새몰 건너 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뱀처럼 길고 꼬불꼬불하다고 불린 것이다.

방하곡

큰 몰 뒷산에 있는 골짜기이다. 모양이 방아 가래 모양 같다고 한다.

삼밧골

남쪽에 있는 세모진 골짜기이다.

새몰

남쪽에 있는 새로 생긴 골짜기이다.

안용심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창녕성씨 통덕락(通德郞) 후손이 살고 있다.

재공

뒤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이곳에 재실이 있었다 한다.

진등

용심 함곡(函谷)에 있는 긴 등이다.

큰몰

용심 6개 자연마을 중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큰몰뒷산

형국이 비용심수(飛龍?水)의 형국이다.

하담

큰 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주로 진양하씨가 살고 있다.

함곡(函谷)

큰 몰 뒷산 뒤에 있는 골짜기이다. 일명 함 골이라고도 하며 사방이 산이 쌓인 함지 모양이다.

서짓골

용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취락개선마을(聚落改善)

서쪽 금호못 안 산기슭에 있다. 1970년대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옛 마을의 이름은 외도계(外陶溪)라 하였다. 내도계(內陶溪)에는 진양강씨의 재실이 있다.

월아(月牙)

진양의 명산 월아산하에 자리 잡은 평화로운 마을이다. 달(月)이 돋을 때 남북으로 솟아있는 두 봉(峯)의 산이 달을 토(吐)하듯이 보이므로 일명 달내미라고도 한다. 경주김씨(慶州金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김해허씨(金海許氏)가 대성이다.

마당바위

월아마을 동쪽에 있다. 마당 모양의 넓적한 바위이다.

산질

뒷산 중턱에 있는 셈이다. 아이 못 낳는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공을 들이면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하여지고 있으며 또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 제사를 지애고 있다 한다.

정새미

월아산 질매재 밑에 있는 약샘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가와 바로 마시지 못할 정도이며 칠월칠석(七月七夕)에는 약물이라 하여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고 한다 .지금은 월아 마을 주민의 상수원이 되고 있다

질매재

월아산 두 봉우리 사이를 말한다. 금산 ∼ 진성면 간을 넘나드는 고개이다. 형국이 소(牛) 짐 싣는 질매와 비슷하다고 하여 불렸다고 한다.

국사봉

월아산 서쪽 봉우리이다. (해발 482m) 한발이 계속되면 나라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일명 무제등이라고도 하며 자유당 때까지도 기우제를 지냈다.

무제새미

월아산 중턱에 있는 샘이다. 옛날 한발 시에 기우제를 올릴 때 이샘의 물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통사바위

월아산 서쪽 봉우리에 있다. 병풍처럼 생긴 넓고 큰 바위이다. 옛날 이곳에서 통신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 무를 숭상한데서 생긴 말이다.

월아산 목책

청곡사의 뒤편 장군대 봉우리에 있다. 성터로 충용장군 김덕령이 설치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1978년, 월아마을 입구에 군수 이원민이 세운 유지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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