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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진주 Today
현재 시각 AM 02:36 2019/06/19 Wed

덕곡리

1914년, 진주군 성태동면 덕곡동(省台洞面 德谷洞)?엄목동(嚴木洞)?관지동(觀旨洞)일부로서 덕곡리(德谷里)라 하였다.

덕곡(德谷)

광제산 정남하에 위치한 이 마을은 주위에 덕재(德峙)니, 덕실(德谷)이니 하는 덕자가 붙은 지명이 많으니, 즉 광제산을 연유하여 덕으로 널리 구제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인 것 같다. 셋 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니 광제산 바로 아래에 있는 토담과 그 아래에 있는 엄목정(嚴木停)과 덕실재넘에 있는 소태골(小台谷)이니, 소태골에는 인동장씨(仁同張氏)와 동래정씨(東萊鄭氏)가 약 300여년전부터 살아왔으며 정씨들의 재실이 있다. 엄목정은 예전에 동리어구에 몇아름되는 장엄(莊嚴)한 기목나무가 서 있어, 멀리서 보면 나무에 가리어 마을이 보이지 않음으로 이런 촌명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이 나무가 동리를 수호(守護)하여 예전에 전염병으로 가장 무섭게 여겼던 천연두(天然痘)가 이 마을에는 들지 않았다고 하며, 일제시에 이 나무를 왜놈들이 베려고 함에 안날밤에 큰 지네가 불을 켜고 서재골로 들어갔고 나무를 벤 왜놈이 몇일만에 죽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전주류씨(全州柳氏)와 수원백씨(水原白氏)와 진양정씨(晋陽鄭氏)가 살아왔다. 토담은 제일 북쪽 마을을 구둔담(久遯潭)이라 하고, 건너 산밑마을을 굼마을이라하니, 밀양박씨(密陽朴氏)들이 오래 전부터 살아왔으며 아랫마을 대밭골에는 6?7호의 인가가 있다. 토담 앞들을 영실들이라 하고 소태골로 넘어가는 골짜기를 덕실이라 하며 이 아래에 골짜기를 가마실(금谷)이라 하니 옛부터 이 삼실안에 도지괘침(桃枝掛針) 여자머리에 꽂혔던 바늘이 도화가지에 꽂인 형국)이 있다하여 람여가(覽與家)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광제산(廣濟山)

마을 북쪽에 있다. 면내에서 집현산 다음으로 큰산이다. 정상에 옛날 통신역할을 하던 봉수대(峰遂臺)터가 있고 동서남북을 멀리 바라볼 수 있으며 중턱에는 금을 채광한 굴이 있다.

송왕골

광제산 중턱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송나라 왕자가 죄를 지어 이곳에 와서 절을 짓고 속죄를 빌었다고 하며 지금도 절터에는 주춧돌과 계단이 완연히 남아 있다. 일설에는 광제사라는 큰절이 있었다 하니, 그 후 절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상정박골

구둔담 정자나무 앞을 상정박골이라 하니, 왕자를 수행한 사람들이 정박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달마들

굼마을 앞들을 달마들이라 부른다. 송왕자 수행원들이 말달린 곳이라 하여 불려 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방골

구둔담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선유동(仙遊洞)이란 큰 글씨가 반석에 새겨져 있다.

덕재(德峙)

덕곡에서 외율로 넘어가는 재이다.

성지골

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큰골

성지골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남인골

굼마을 뒤편 골짜기이다.

큰악골(大內谷)

엄목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안에 삼박골과 중상골이 있으며 막마 침에 큰악골재가 있으니 팔미로 넘어가는 길이다.

서재골(書齋谷)

큰악골 아래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서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지 금도 그 터가 완연히 남아 있다. 골안쪽에 불당골이 있으니 옛날 불당이 있었다.

점뚝

동편마을 북쪽의 산이 점을 찍은 듯이 군데군데 바위가 박혀있음으로 이렇게 부른다.

범밭골

서편 마을 앞산에 있는 굴이다. 옛날에 범이 살았다고 한다.

큰골

마을 서편에 있다. 골 안에 샛기골, 바랑골이 있다.

정자골(井子谷)

좋은 샘이 있어 나무꾼들이 쉬는 곳이다.

대롱골

큰골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대롱같이 길다랗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홍지(洪旨)

홍지동은 남양홍씨(南陽洪氏)들이 약 300년동안 살아온 세장(世庄)이다. 지금도 홍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마을에서 등(嶝) 하나를 넘아가면 홍지곡(洪旨谷)이라는 골짜기가 있으니 인근에서 홍재(洪齋) 또는 홍묘(洪墓)라고 부른다. 홍묘는 고려때에 높은 벼슬을 지낸 홍의(洪毅)란 분이 이곳에 안장(安葬)된 후로, 불러온 이름이니 묘자리가 좋아 동래정묘(東來鄭墓)와 더불어 천하명지(名地)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홍재는 홍묘아래 있는 재실이니, 옛날에는 홍복사(洪福社)라는 절이 있어 승려들이 묘를 수호하였으나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모원재(慕遠齋)라는 재실이 들어서면서 홍재라 하였으니, 봄이되면 구경오는 사람이 허다할 뿐 아니라 특히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이름난 곳이다. 계원초등학교(지금은 폐교)가 있다.

인암(印岩)

마을 남쪽에 있는 높은 바위이다. 일명 상사바위라 하나, 상사바위라 하면 마을에 화가 온다하여 암면(巖面)에 인암(印岩)이란 글자를 크게 새겨 불러온다.

용자골(龍座谷)

동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돌방으로 가는 재가 있다.

서재안(書齋內)

동편에 있다. 옛날에 홍씨 집안의 서재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다.

노문골(魯門谷)

마을 뒤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놀미라고도 부른다.

중골(中谷)

서편에 있다. 중간 골짜기란 뜻이다.

배랑골

중골안에 있다. 중의 배랑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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