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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진주 Today
현재 시각 AM 09:21 2019/07/21 Sun

외율리

1914년 진주군 명석면 내율동(內栗洞)?외율동(外栗洞)?내팔미동(內八美洞)?외팔미동(外八美洞)?오산면 오미동(吾山面 五美洞) 일부, 단성군 오도면 토현동(悟道面 吐현洞)으로서 외율리(外栗里)라 하였다.

외율(外栗)

외율리는 김삼선(金三線)국도가 남쪽으로 뻗은 산청군 단성면과의 경계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법정리(法定里) 행정구역은 내율과 팔미를 포함하여 외율리라 하였으나 자연마을 단위로 편성되면서 내율과 팔미는 분리되고 우편의 중촌(中村), 내촌(內村)과 좌편의 오산(五山), 토현(土峴)을 합하여 외율리라 부른다. 이 마을은 인근에서 지경(地境)이라고도 많이 부르니, 옛날에는 단성토현과 오산면이 시내 하나로 경계를 이루었고, 지금은 토현고개로 단성군과 경계를 이루어 행인들의 리정표(里程表)가 되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성씨는 파주염씨(坡州廉氏)였는데, 다래능굴을 치고 들어왔다고 하며, 그 뒤를 이어서 의령남씨(宜寧南氏)와 장흥고씨(長興高氏)와 남양홍씨(南陽洪氏)가 들어왔으며, 특히 그 중에서 염씨와 남씨 집안이 울리고 살았으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오산은 언래 오산면 오산촌이었고, 토현은 단성군 오도면 토현동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외율리로 편입되었다. 오산에는 함안조씨(咸安趙氏)가 오래전부터 살아왔으며, 토현은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옛부터 주민들의 교육열이 대단히 높았으니 일찍이 소남(召南) 부자의 재실행랑을 빌리어 야학교(夜學校)를 개설하였으며 이것이 모체가 되어 외율국민학교가 마을중앙에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러고 있다.

국사봉(國士峰)

마을 남쪽에 광제산에서 뻗어온 산맥이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으니 이를 국사봉이라 하며, 이 지방의 필봉(筆峰)이 된다.

축원단(祝願壇)

국사봉밑에 병풍처럼 바위가 둘러쌓인 곳을 촉석골(矗石谷)이라 하고, 이 촉석골 안에 짚동만한 바위가 있으니 축원단이라 한다. 옛날 축원단 아래 사람이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집에 손님이 오면 이 바위 밑에서 사람 수에 따라 밥을 할 만큼 쌀 이 나와서 주인은 걱정 없이 손님대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욕심이 생겨 한꺼번에 많은 쌀을 얻으려고 부짓갱이로 쑤셨더니 부정을 타서 그 후로는 쌀이 안나옴으로 손님이 오면 정성껏 축원을 올려 밥쌀을 겨우 얻어냈다 하여 축원단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옛 전설을 간직한 채 의연히 천년세월을 지켜보고만 있다.

무당바위

동북쪽 시루봉위에 있는 바위이다. 옛부터 날씨가 흐린 날이면 쿵쿵 북치는 소리가 났다. 그 후로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부인들이 여기 와서 빌었으며, 또한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요즈음도 이 바위 밑에서 절을 올리며 쌀을 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샘이

국사봉밑에 있는 샘이다. 한여름에도 얼음장 같은 물이나와 참샘이라 한다. 또한 샘옆에 넓은 터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있어 마을 장정들이 힘을 겨뤄보는 장소가 되었다.

당산골과 석정(堂山谷과 石停)

무등 서북쪽에 당산이 있으니 정월대보름날이 되면 마을의 태평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고 농악을 울리며 즐겼다. 또한 이곳에 큰 정자나무가 있고, 그 주위로 바위와 반석이 절경을 이루어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된다. 옛날에는 마을에 잘못하는 자가 있으면 동민들이 이곳에 모여 동네재판을 하여 징계시켰고, 큰 잘못이 있는 사람은 덕석몰이를 하여 쫒아냈다고 한다.

벌먼당

마을 서편에 있는 널따란 언덕을 말한다. 옛날에는 송림이 우거져 놀이터로 좋았으며, 지금은 개간을 하여 밭이 되었으나 묘지로 욕심내는 곳이다.

말터바위

무등 셋째 골짜기를 말타골이라 하고, 그 골짜기에 말을 매었다고 하는 말터바위가 있다. 밤실이 예전에 역원(驛院)의 말을 길러 준 곳이라 이런 지명과 더불어 이런 바위가 있다고 한다.

말샘

옛날 소남역과 신안역을 왕래하는 역마의 물을 먹인 샘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 샘에는 가물어도 물이 많이 난다

책바위(冊岩)

마을남쪽 서재골 옆에 있는 바위이다. 모양이 흡사 책을 쌓아 놓은 모양이다.

동학먼당

마을 동편에 있는 먼당이다. 일명 거무자평당먼당이라고도 한다. 옛날 동학란 때에 이곳에서 일본헌병과 동학군과 격전이 벌어져 보름간을 버티며 싸우다가 모두 전멸하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골짜기가 있으나 다 열거하지 못했다.

내율(內栗)

이 마을은 광제산 서북편에 자리한 산간벽촌이다. 옛부터 밤실(栗谷)이라 불렀다. 주위산에 밤나무와 대추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하며, 5?6십년전까지만 하여도 가을비가 오면 그 열매가 개울바닥에 발갛게 떠내려왔다고 한다. 내율이란 촌명은 점차 인가가 늘어 마을이 커지면서 바깥밤실, 안밤실로 구별하여 부른데서 유래된 것이니 지금도 인근에서는 내율보다는 밤실로 많이 불러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장흥고씨(長興高氏)와 남양홍씨(南陽洪氏)들이 주로 살아왔으나 지금은 다른 성씨들도 살고 있다. 마을에서 남편으로 들이 길다랗게 열려있어 벋어징이들이라 부르니 벋으져 넓어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토질이 비옥하고 기후가 서늘하여 옛부터 마늘 명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송장군묘(宋將軍墓)

마을 동편 산중턱에 있는 고총(古塚)이다. 어느 때의 인물인지 알 수 없으나, 이 묘에 벌초를 해두면 득남(得男)하는 영험이 있으므로 7?8월 벌초시기가 되면 아들 없는 사람들이 몰래 다투어 풀을 베어 일년에 몇 번씩 벌초가 되었다고 한다.

얼칭이고개

마을 서편에 있는 높지 않은 고개이다. 전일 이 마을 사람과 신기동전 장꾼들이 단성을 왕래하는 중요한 길이었다. 그러나 옛날에 어떤 혼인행차가 이 곳을 지나다가 큰 변을 당한일이 있었음으로 시집 장가가는 사람은 일체 이용치 않았다고 한다.

벼락바위

마을 동북쪽에 있는 바위이다. 예전에는 한 덩어리 바위산이었으나 어느 해에 벼락을 맞아 여러 조각 바위가 되었음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불당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불당이 있었다고 한다.

깃대봉

불당골의 정상 봉이다. 이 지역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다.

삼장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외골로 길게 뻗어 있다.

새끼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적다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오리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단성 오리골 사람들의 나무보탄이었다.

큰갓골, 작은갓골

동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크고 작은 산골짜기란 뜻이다.

쇠막골

마을 동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개장지골(改葬地谷)

마을 서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없는 사람들이 쉽게 묘를 썼다가 형편이 풀리면 개장하여감으로 이렇게 불렀다.

체분골(替墳谷)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비가 오면 토사가 많이 전답에 내려와 그것을 걷어내면 없던 무덤이 생김으로 불러진 이름이다.

고개밑

신기로 넘아가는 재밑을 말한다.

팔미(八美)

주위의 높고 낮은 산 세속에 여덟 군데 명지가 있다하여 팔미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명에 걸맞게 멀리서 두줄기 산맥이 갈라지며 깊숙한 골을 이루었으니 양편산록을 따라 밖에 있는 마을을 외팔미라 하고 안쪽에 있는 마을을 내팔미라고 한다. 내팔미에는 진양강씨(晋陽姜氏), 김녕김씨(金寧金氏), 밀양박씨(密陽朴氏)들이 오래 전부터 살아왔고, 외팔미에는 경주최씨(慶州崔氏)와 칠원제씨(漆原諸氏)가 옛날부터 살아왔다. 외팔미 어구에 국도가 남북으로 뻗어있고, 이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나지막한 고개가 나오니 이를 평고개라 한다. 고개넘에 마을이 있어 창밭이(倉田)라 부르니 고개밑 좌편에 거창에서 떠내려온 산 무더기가 있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하고, 일설에는 옛날 이곳에 큰 세미(稅米)창고가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안동권씨(安東權氏)가 옛부터 살아왔으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한 두집씩 땀을 이뤄 살고 있다.

밤나무골

외팔미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밤나무가 많이 자생하였다.

황태밭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민둥산으로 황토가 많아 이렇게 불렀다.

용산골

동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용산으로 사는 재가 있다.

약샘골

동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중턱에 약샘이 있다.

가는골

동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안이 좁아 이렇게 부른다.

감나무골

동쪽에 있다. 돌감나무가 많이 있다.

새미골

내팔미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좋은 샘이 있다.

나비등

외팔미 동북쪽에 있다. 산등이 나비모양으로 생겼다.

병풍골(屛風谷)

내팔미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병풍을 두른 듯이 경관이 좋다.

방아등골

내팔미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방아모양의 등(登)이 있다.

숯 골

내팔미 안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숯을 많이 구웠다.

등잔설

내팔미 북쪽에 있다. 산이 등잔 모양으로 생겼다.

돌곳설

내팔미 북쪽에 있다. 산이 돌곳 모양으로 생겼다.

큰 골

외팔미 뒷산 골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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