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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리(長興里 Janghungri)

장흥리(長興里)는 1914년 3월 1일 시행된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진주군 사죽면(沙竹面) 장흥동(長興洞), 신당동(新塘洞) 각 일부로 집현면에 편입되었다. 장흥리(長興里집)는 행정상 장흥(長興)과 월평(月坪)으로 나뉘어 있으며 집현면 우체국 소재지이다. 수의골, 서원골, 굼터, 야딸, 잔땅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장흥(長興 Janghung)

장흥은 사죽면 장흥동(長興洞)의 장흥을 지칭한다. 2000년 현재 세대수는 65세대, 인구는 215명이다.

강진마을

수이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원마을

신당서원(新塘書院)이 있었던 마을이다.

서원못(書院池)

서원 앞에 있었다 해서 지금도 서원못으로 부른다.

광진교(廣津橋)

수의동 서남쪽에 있는 다리이며 서울로 가는대로에 있었다. 수심(水深)은 명주꾸리 하나가 모자라는 정도로 전해지고 있으며 석재(石材) 6쪽으로 만든 다리이다. 1쪽이 폭 1m, 길이 2m였는데 어떻게 놓았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1943년에 고기 잡는 사람이 폭약(爆藥)을 터뜨려 그 자리에 묻히고 말았다. 장흥리와 냉정리의 경계에 있다.

수의골(繡衣谷)

장흥 본동이며, 일명 시비골로도 불렸으나 한자(漢字)로 표기한 것이다.

도덕골

장흥동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오동멀리

장흥동 남쪽에 있는 들이다.

연맷골(蓮實洞)

장흥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절터

장흥동 북쪽에 있다. 절이 있었던 골짜기이다.

월평(月坪 Wolpyong)

1947년 장흥리(長興里)에서 행정리로 분리된 마을이다. 짠당마을, 얍당마을 또는 수리월(水裡月)이라고도 했다. 2000년 10월 31일 현재 세대수는 72세대이며, 인구는 250명이다.

장재못(長在池)

월평 서쪽에 있다. 과거 진주시와 진양군의 경계이며 국유하천(國有河川)이다. 옛날 장씨라는 큰 부자가 살던 집터인데 시주를 얻으러 온 스님을 박대한 후로 차차 가세가 기울어 그 자리가 패여 못이 되었다고도 하며, 또 옛날 부흥더미에서 북강(北江)이 있었는데 큰 대수(大水)때 절강(切江)이 되어 물이 남강으로 빠지고 깊은 곳이 즉 장재못과 서원못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못(蓮池)

월평 북쪽 들 중앙에 있다. 연꽃과 연실이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장흥과 월평마을의 경계못이다.

월평다리

월평마을 입구에 있다. 장재못과 서원못의 경계로 나무다리였다. 1964년 당시 차균희 농림부장관이 다녀간 후 이듬해에 콘크리트 다리로 놓였다.

부엉덤

월평 동남쪽에 있는 절벽이다. 부엉이가 서식했다고 한다.

비석거리(碑石路)

월평 동쪽 산 아래에 있다. 옛날 대로(大路)옆에 수십 개의 비(碑)가 있었는데, 지금은 뽑히고 매몰되어 몇개 남아 있지 않다.

원천(源泉)

큰 새미라고도 한다. 월평에서 신당가는 길 옆에 있다. 대한(大旱)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온 동리사람은 물론 타동에서도물을 길어갔다. 표석(表石)이 있다.

새동네

1980년 7월23일 태풍으로 인해 완파된 것을 진양군이 보조해 복구된 마을이다.

직선도로

1980년 돌풍피해로 인해 구 진양군에서 구호사업의 일환으로 월평입구에서 월평다리까지 구부러진 도로를 직선으로 개설하였다.

섬산(島山)

월평 동쪽에 있으며 신당리에 소재한 산으로 옛날 금산면 월아산 줄기였는데 남강물이 절강돼 부흥덤이 생기고 산맥이 끊겨 섬산이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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