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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시 진주를 가다1-근대교육의 효시, 진주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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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04-04
기자 :
김종신
조회 :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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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일컬어 흔히들 <교육 도시>라고 한다. 시민 절반 가까이가 학생이라고도 한다. 교육 도시 진주라는 명성에 걸맞은 교육 도시 진주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먼저 대한민국 근대 교육의 시작이기도 한 진주초등학교가 있다. 지금은 평거동으로 이전한 구 배영초등학교 터에 자리한 진주교육지원청 바로 옆에 있다. 이 학교는 경남 최초의 공립 근대학교이면서 전국 최초로 여성 교육을 시행한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이다.

 

학교 정문 옆에는 <경상우도 소학교 터>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 지금의 경상남도는 진주부와 동래부로 나뉘었는데 진주부가 있던 진주성에 경상우도소학교가 이듬해 설립되었다. 이는 1895719일 발표한 조선의 소학교령(칙령 제145) 에 따른 것이다. 현재 진주초등학교의 뿌리가 여기에서 출발한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의병 봉기 등으로 두 달 만에 휴교에 들어가 1896년 문을 다시 열었다.

 

관찰부 회의실에 있던 학교는 1902년 진주성 내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터로 이전했다. 1906년 공립 진주보통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1909년 우리나라 최초의 남녀공학인 여자 학급(3년제)을 설치했다. 전국 최초의 남녀공학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꼼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정빈이 공사비를 지원해 여학생 전용 교실 2칸을 신축 기증한 덕분이다.

 

구한말 격동기에 학교는 여러 번 휴교를 거듭했다. 1910년에서야 제1회 졸업식을 치르고 14명의 남자 졸업생을 배출했다. 1914년에는 지금의 위치에 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했다.

 

광복 이후인 19459진주중안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2011년 현재의 진주초등학교로 바뀔 때까지 66년간 중안이라는 교명으로 불리었다. 1995년에는 개교 100주년을 맞기도 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진주초등학교 개교가 알려진 1895년이 아니라 1896년 말에서 1897년 초 사이로 추정하며 명확한 자료수집과 연구를 촉구하기도 했다.

 

202544일 시민명예기자 김종신(하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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