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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진주.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곳곳에 왜 이런 이름이 생겼을까 궁금해하는 이도 많다. 우리 진주의 지역과 명소, 말속에 깃든 유래를 안다면 더욱 진주가 더 잘 보이고 애정이 생긴다. 진주 속 진주의 유래를 찾아가 보자.
서울 경복궁과 창덕궁 등의 궁궐 주요 건물의 모퉁이마다 철로 만든 드럼통 같은 항아리가 있다. 큼직한 철 항아리는 '드므'다. 궁궐 전각의 '드므'는 불이 났을 때 불을 끄는 소방수를 채워놓았던 소방 기구이다. 큰 그릇을 쓰레기통으로 착각해 버리는 일부 관람객 때문에 지금은 투명 뚜껑을 씌우고 용도를 설명하는 팻말이 함께한다.
서울 궁궐에 ‘드므’가 있다면 진주에는 ‘드무실’이 있다. 말티고개에서 장재실로 가는 회전교차로에서 집현면 사촌리 쪽으로 100m 정도 가면 ‘드무실’이 나온다.
지금의 초장동에 속하는 하촌동은 진주군(晋州郡) 동물곡면(冬勿谷面 ) 중촌동(中村洞). 하촌동(下村洞). 장재곡동(長在谷洞) 지역이었다. 1914년 집현면(集賢面) 하촌리(下村里)라 하였다가 1938년 7월 1일에는 진주읍(晋州邑)에 편입되고 1949년 8월 15일에는 하촌동(下村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주문화원이 펴낸 『진주지명사(晉州地名史』에 따르면 ‘하촌동을 총칭하는 말이다. 원래 이 골짜기의 동네는 물이 아주 풍부해서 가뭄을 모르고 지낼 정도였었다고 하는데 언제나 물을 담아 놓는 드므(독) 같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편, 마을회관 앞에는 <3.1운동 발상지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는 ‘진주와 서부경남 3·1운동 발상지. 의논 장소 순국 지사 김재화 생장지’라는 글도 새겨져 있다. 진주지역에서 독립 만세운동 결의를 처음 다진 곳이다. 진주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시작해서 5월까지 연인원 3만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진주 의거를 직접 준비한 사람들은 김재화, 박진환, 심두섭, 권채근, 강달영, 조웅래, 박대업, 정용길 등과 여기 드무실에서 비밀 회합을 하고 의거를 결의했다.
2025년 2월 19일 시민명예기자 김종신(하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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