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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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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04-24
기자 :
김용현
조회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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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독립운동가 고 김찬기 선생 명예졸업장 수여 -

 

1925년 일제강점기 속에서 개교한 진주고등학교가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10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19일 오전 10, 진주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조규일 진주시장, 지역 국회의원, 김지현 경남서부보훈지청장, 김영태 진주고 총동창회장, 서지현 진주여고 동창회장, 그리고 동문인 가수 오유진 씨를 비롯해 시민과 동문 2,000여 명이 참석해 뜻깊은 순간을 함께했다.

기념행사는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인사말, 진주시장 축사, ‘자랑스러운 진고인상수여, 고 김찬기 선생 명예졸업장 수여, 100주년 기념음악회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독립운동가 고 김찬기 선생(1915~1945)에게 수여된 명예졸업장이었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학생운동 참여로 인해 제적당해 끝내 졸업장을 받지 못했으나, 개교 100주년을 맞은 이날, 그의 아들 김위 선생(88)과 딸 김주 여사(85)가 대신 명예졸업장을 전달받으며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총동창회와 72회 동문들이 주관한 이날 명예졸업장 수여식에서는 고 김찬기 선생의 영정사진도 복원되어 진주고 역사관에 영구 전시됐다.

1929년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진주고등학교)에 입학한 고 김찬기 선생은 1930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아 진주공립고보에서 동맹휴학 시위를 주도하며 항일운동에 나섰다. 격문을 제작·배포하며 시위에 참여한 그는 그해 체포되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학교에서는 제적 처분을 받았다.

이후에도 고인은 대구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고, 격문 배포로 또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히는 등 항일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중국 임시정부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중, 일제의 고문과 박해로 쇠약해져 194510월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그해 11,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귀환 시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다.

고 김찬기 선생은 1990, 항일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김지현 경남서부보훈지청장은 명예졸업장 수여식에서 독립운동가 고 김찬기 선생의 명예졸업장을 준비해 주신 진주고 총동창회에 깊이 감사드린다,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들의 용기와 정신을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100년의 역사를 품은 진주고등학교는 이날 행사를 통해 교육과 독립운동의 정신을 함께 되새기며, 미래 세대를 향한 새로운 100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2025419일 시민명예기자 김용현(금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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