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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시 조선시대 상세연혁으로 시대별 명칭 및 내역 제공
시대 명칭 내역
조선시대 (서기 1392)
진양
대도호부 조선조 태조원년(1392)에는 진양이라 하고 그의 현비의 내향이라 하여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서기 1402) 진주목 태종 2년에는 다시 진주라 하고 진양대도호부를 진주목으로 내려 고쳤다. 동왕 13년(1413)에는 비로소 8도가 정비되었는데 이때의 진주목은 전국 20목 중의 하나였다. 세조 12년(1466)에는 종전의 병제를 5위도총부로 개편하였는데 그 산하인 용양위(좌위)의 지방조직으로 진주에 경상도 우부진주진관을 두었다.
중종 14년(1519)에는 경상도의 사무가 번잡하다 하여 낙동강을 경계로 좌, 우도로 나누었는데 이때 진주는 우도에 속해졌다가 동년에 통합되었다.
선조 25년(1592)에는 임진왜란으로 길이 끊어져 교통이 불편하다 하여 다시 나눈 우도에 속했다가 그 이듬해에 다시 통합되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진주 목사 김시민은 불과 3천8백여 명의 군사로 2만 명의 왜적을 맞아 진주성을 사수하였으나 그 이듬해(1593) 6월 29일에 다시 침략해 온 왜구를 맞아 김천일, 황진, 최경희등 여러 장수들은 격전을 벌였으나 7만이 넘는 군관민이 장렬히 순절했다.
동 28년(1595)에는 땅이 넓고 통치가 곤란하다 하여 또 나눈 우도에 속해졌다가 그 이듬해에 다시 통합된 경상도에 속해졌다. 동 37년(1604)에는 임진왜란으로 분탕이 되었던 합포(마산)의 경상도 우병영을 형세가 험고한 촉석성으로 옮겨 절도사가 목사를 겸하였는데 인조 13년(1635)에는 다시 병영을 나누어 옮기고 목사로 환원했다.
(서기 1895) 진주부
진주군
고종 32년에는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로 나누어 관찰사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그 23부 중의 하나인 진주부(지금의 도격)가 설영되고 진주목은 진주군으로 개칭되는 군수(참서관)를 두었다.
(서기1896) 경상남도
진주군
1896년 8월 4일(건양원년)에는 다시 23부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진주는 경상남도에 속해지고 도청 소재지가 되어 진주군은 50면 298리 동을 소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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