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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거동은 석갑산의 동남쪽 일대 남강 퇴적지 가장자리에 취락이 형성되어 집성촌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취락의 발달형태로 보면 동으로 남강이 흐르고 강주변으로 퇴적층 옥토가 쌓이므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함으로 평거라는 이름의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요사적지로 1968년 12월 19일 제169호로 지정된 고려고분군 6기가 석갑산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광탄진(廣灘津)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광무3년(1899) 판 「진주군읍지」사의 「진주군지도」에 보인다. 진양호가 조성되기 이전에는 광활한 평지였다. 조선조 고종 갑오년(1894) 9월 8일, 앞서 불청객 일본군이 조정의 철수요구에도 불구하고, 구성을 포위하여 고종을 협박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내정을 간섭하는 등 국권을 침략하므로, 이에 "국가의 안위는 국민의 생사에 있고, 국민의 생사는 국가의 안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을 편안케 할 방도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시작된 「진주초차괘방」에 의하여, 진주목 백성 1천여 명이 평거 광탄진에 모여 군중대회를 열고, 진주성으로 진격하였다. 이 날 진주병사 민준호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병사들을 거느리고 이들을 맞이해 줌으로써 동족끼리의 유혈사태는 없었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이 지금은 진양호 내에 수몰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발간 「주한 일본공사관기록」에 자세하다.

감나뭇골

평거동에 소재하고 있는 골짜기는 옛날부터 감 산지로서 많은 감나무가 재배되고 있었다.

고려고분군(高麗古墳群)

평거동 산 44번지 2호에 있는 고려 때의 무덤이다.

굴바구

본동에 남강변에 있다. 지금도 굴바구라고 한다.

돌바구

본동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안골

본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동네덤

본동 남쪽에 있는 더미이다.

동수삐딱

본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역이 있었다.

들말

들판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들말이라고 한다.

명당골

본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못밑새미

본동 서북쪽에 있는 우물로 위에 못이 있었다.

미륵암

본동 중앙에 있는 높이 3m의 미륵이다.

송 매

이 마을에는 송씨라는 유력한 사람이 살면서 매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매화나무는 없어 지고 송시를 기념하는 조그만한 정자만이 남아 있다.

신기동

조랫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랫골

마을의 지형이 조리같다는 뜻으로 이 마을을 조랫골이라 한다.

지령골(芝靈谷)

이 골짜기에는 고목이 많아 지초(至草), 즉 버섯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 지초를 영지(靈芝)라고도 하는데 이 영지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으로 불리고 있다.

평골

본동 서쪽에 있는 평평한 골짜기이다.

함새미

본동 앞에 있는 우물이다.

행정구역명칭 변천현황 및 명칭유래

행정구역명칭 변천현황 및 명칭유래 구분, 현행행정 구역 명칭, 시대별 명칭변천 현황, 명칭유래
구분 현행행정 구역 명칭 시대별 명칭변천 현황 명칭유래
삼국
및 통일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시대 대한민국
시·도 晉州市 平居洞
  • 菁州(신라 (신문왕 5년 685 년)
  • 康州(신라 경덕왕 16년 757년)에 소속
  • 晉州(고려 태조 23년 940년)
  • 晉州牧 (성종2년 983년) 에 소속
晉州牧坊里 西面 平居里 (朝鮮朝前期)
  • 晉州郡 平居面 (1914)
  • 平居面 (8里, 1932년)
  • 晉州市 平居洞(1949.8.15)법률 제32호
  • 平居洞,신안동 분동(1995.3.1)
  • 平居洞 일부 판문동에 이속 (1997.7.1)
  • 平居洞은 석갑산의 동남 쪽 일대 남강 퇴적지 가장자리에 취락이 형성 되어 집성촌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 취락의 발달 형태로 보면 東으로 남강이 흐르고 강 주변으로 퇴적층 옥토가 쌓임으로써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여 平居라는 이름의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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