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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리(淸潭里)

남강이 서북으로 흐르고 방어산 서쪽편 기슭에 청담이라는 동리가 있었는데 1914년에 청담, 덕암, 무듬실, 마실, 들말, 토실, 염창 7개 자연마을을 행정구역상 청담리라고 하였다. 이후 행정구역 변경으로 들말, 토실, 염창을 평촌이라 하였다가 1990년 마을이름 되찾기에서 행정리동인 청담마을로 개칭되었으며 무듬실, 허떡골, 남은골 3개 자연마을을 합해서 무등마을로 되었다. 마실, 덕암 2개 자연마을을 덕암마을로 하였으며 가구수는 무등-49호(농가:44, 비농가5), 청담-87호(농가:78, 비농가9), 덕암-45호(농가:37, 비농가8)이며 인구수는 무등-129명(남:64, 여:65), 청담-235명(남:128, 여:107), 덕암-87명(남:41, 여:46)이다.

무등

청담리의 3개마을중 하나의 행정리동으로 옛날 지명은 무듬실이었다. 무등마을 안에는 남은골, 허덕골, 안몰 3개 자연마을이 있고 서북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있다. 앞에는 청담들 이라는 큰들이 있어 미맥과 시설하우스 작물을 주로 경작한다. 남강건너 서북쪽으로는 의령군 화정면이다.

청담제방

청담리 무등 마을에서 청담마을 입구까지 제방으로써 1963년 8월에 착공하여 1964년 6월에 완공되었다. 제방축조 이전에는 해마다 남강물이 범람하여 110Ha의 농경지가 침수되어 황폐된 토지였으나 지금은 제방축조로 인하여 옥토가 되어 황금벌판으로 변하였다. 규모는 연장 2.7㎞, 폭30m, 높이 15m이며 공사비는 당시 미밍여농산물 원조양곡 밀가루 350톤, 자재대(배수관문설치비) 150만원, 지원부담금 830만원이다. 지원부담금 830만원은 80%가 제방부지 매입비로 충당되었는데 공사이름을 일명[밀가루 공사]라고 불렀다. 당시 공사장비는 하나도 없었고 순전히 인력으로서 지게를 지고 땅떼기로써 제방축조를 하였는데 당시 미고문관이 지게라는 장비가 몇 마력이냐고 묻기도 한 일화가 있다. 건너편에는 남강이 흐르고 있으며 강을 건너면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제방은 유유히 흐르는 남강물을 지키며 110Ha의 옥토를 보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강정골

남한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남한골

무듬실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무듬실

염창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이름인 무등마을이다.

무듬실들

무듬실 앞에 있는 들이다. 경지면적이 110Ha이며 현재 청담들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허덕곡

강정골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청담

청담리의 3개마을 중의 하나이다. 마을 앞에는 남해안고속도로가 통과하며 인구는 235명이고 가구수는 87여가구이다. 동으로는 함안군, 북으로는 의령군을 잇는 경계지점이며 본래 이름은 청담이었으나 일제때 토지구획정리를 하면서 평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으나 90년 5월경 주민들의 옛이름 되찾기 운동에 의해 현재는 본래의 청담마을로 개칭되었다. 김해허씨와 능주구씨의 집성촌이며 마을 한복판에 큰 못이 있어 맑은청 못담을 써서 청담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남평문씨와 선산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마을 뒤편에는 해발 530m의 방어산이 있고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미맥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10여가구가 고추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다.

개정이

토실동쪽에 있는 산이다. 계적등이라고도 부른다.

고랑

청담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앞에는 남해안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마을 앞쪽 100여m에 남강이 흐르고 있다. 강건너 마을쪽에서 서쪽으로는 의령군 화정면 장박이 있고 북쪽으로는 함안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마산 방면에서 진주 쪽으로 진양군의 관문이 되는 맨처음의 자연마을이다. 마을 앞 남강에는 인근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낚시를 즐긴다. 현재 마을 가구수는 14가구수이며 인구수는 50여명이다.

덕바구

장터 동쪽에 있는 바위이다.

들말

평촌이라고도 부른다. 청대미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90년 5월 옛이름 되찾기로 현재 청담마을로 개칭되었다.

마당바구

방어산 상봉에 있는 바위이다. 마당과 같이 넓게 생긴 바위라하여 붙여진 말이다.

가마바구

가마와 같이 생긴 바위이다.

신질바위

높이가 50질이나 된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멱바위

토실 골짜기에 있다. 총각둠붕이라고도 한다. 목욕하는 웅덩이 위의 바위를 목욕바위 또는 메억(멱, 목욕)바구라고 한다.

병풍바위

토실 골짜기에 있다. 산 중턱에 높이 4m, 길이 약10m의 병풍처럼 생긴 바위이다.

매봉들

토실 북쪽에 있는 들이다.

방어산고개

들말 동쪽에서 방어산(도산천)을 넘어가는 고개이다.

신기

방어산 산록 밑에 있는 마을이다. 고속도로의 개통되어 마을이 없어졌다. 새터라고도 부른다.

신질덤

들말 북쪽에 있는 지역이다. 남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덤의 길이가 50m정도된다고해서 신질더미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약새미터

큰골에 있던 샘의 터이다.

염창

남강변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진주, 함안, 의령 세군의 경계지이며 관란정 아래에 있는 마을로서 남해안 고속도로개설로 인하여 철거된 마을이다. 현재는 1가구만이 살고 있다.

염창나루터

염창 앞에 있는 나루터이다. 강을 건너면 남강하류인 의령군 화정면 화양리 장박마을이다. 현재 다리를 건설중에 있다.

절골

토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주개등

토실 동쪽에 있는등이다. 지형이 주걱처럼 생겼다해서 주개등이라고도 한다.

처자웅덩

토실 동쪽에 있는 웅덩이다.

총각웅덩

토실 동쪽에 있던 웅덩이다.

큰골

방어산 마당바우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이다.

큰등

관음암 뒷산에 있는 산등성이다.

토실

들말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토곡이라고도 부른다. 뒷 산인 방어산 속에는 약 500m정도 거리에 관음암 절이 있으며 앞쪽으로 남해안고속도로가 통과한다. 현재의 가구수는 10여호이며 인구 3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토실고개

토실에서 승내리 승산으로 가는 고개이다.

방어산성

산 위에는 석성이 있고 산 서쪽에는 장군당이 있으며 아래에는 마제현이 있고 북쪽에는 장군의 철상이 있으며 동쪽에는 고사의 유기가 있다. 세상에 전하기로는 홍무십일년, 봄에 왜병이 반성에 침입하여 이 산정에 올라와서 책을 세우고 스스로 보전하려 하니 상원사 우인열이 박경수, 오언과 더불어 합하여 에워싸고 공격하여 목 삼십사급을 베었다고 한다. 혹은 말하기를 이절 이름을 망일암이라 하였고 장군의 성명을 목신우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군은 효용이 절인하고 두겨드랑에 날개가 있어 깍아지른 듯한 구렁을 날아서 오르며 힘은 능히 삼백근이나 되는 활을 당기더니 마침 왜적의 대란을 만났다. 장군은 군사 삼천명을 거느리고 또 승인 혜성이라는 사람을 얻어서 성으로 가서 산정을 지키면서 적이 이르는 것에 대비하고 앞 봉수리를 바라보고 진을 쳤다. 장군은 성벽을 굳게 닫고 몇 달을 나오지 아니하다가 천개의 활을 쏠 것을 명령하니 대전이 비오듯하여 맞은 자는 불타죽고 죽은자가 삼대와 같았다. 적은 신병이라고 하여 물러나 도망하니 당시에 사람들이 이를 사모하여 장군과 혜성의 유상을 만들어 모시고 철마십여필도 바위 위에 남겨두었다. 이리하여 말들과 싸움에서 흘린 피가 지금까지 석면에 아롱져 있어서 옛발자취가 완연한 것이 어제와 같다. 산을 방어라고 일컷고 봉우리를 산성이라고 이름하여 재에 마제라는 것이 있고 리를 승어라고 이름한 것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호박골

큰등 옆에 있는 골짜기이다.

희밍이고개

절골 동쪽에서 함안군 군북면 지실로 가는 고개이다.

덕암

들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푹꺼진 골짜기 마을로 마실 또는 마곡이라고도 부른다. 시장이 있는 마을이다. 행정리동인 덕암에는 본마을인 마곡마을과 장터마을 2개 자연마을이 있다.

마실고개

마실쪽에서 승내리로 가는 고개이다. 고개를 넘으면 승산동이 나오며 지신산정이 있다.

성인곡

서당과 고등공민학교가 있었던 곳으로서 성인들이 살고 있었다하여 성현골 또는 성인골이라 전해지며 옥봉정사(고등공민학교로 활용되기도 하였음)가 있었을 당시는 10여 가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1가구만 있으며 남해 고속도로 동편에 위치하고 서편은 장터와 승산리 하동마을이 있으며 방어산을 뒤로한 곳이다.

시장터

장터마을로써 지수장이 서고 있는 자연마을이며 장터에서 50m부근에는 군 보호수인 큰 정자나무가 있다. 나무숲이 이루어져 있으며 바로옆에는 승내천이 흐르고 있다. 정자나무숲 공터에 일제 때 면장을 역임한 고 성태연 면장 송덕비가 있고 1921년 11월 지수면민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준 고허건의 불망비를 91년 8월에 승내 새마을회에서 건립하였다.

포구나무

수백년 된 정자나무이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계운동

지수시장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현재7호가 살고있으며 김해 허씨 장령공의 정려가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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