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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강목발은 진양에 있어서는 홍길동(洪吉童)에 버금가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강목발은 지금의 진양군 대곡면 대방산 줄기 가정(佳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한 도승(道僧)이 찾아와 사립 밖에서 묻기를 "아이를 낳았느냐"고 물어 "아직 안 낳았다"고 하니 다시 와서 물었다.
도승은 세 번째로 다시 와서 또 물어 아직도 안 낳았다고 하자 이번에는 혀를 끌끌 차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 강목발은 축(丑)시에 났다. 자(子)시에 태어날 사람이 축시에 났다는 것이다.
도승이 찾아온 것은 비범한 인물이 태어날 줄 알고 대인(大人)이 날 시를 물어보고, 다시 대적(大敵)이 날 시에 물어 왔는데, 그는 대적이 날 시에 태어났다고 한다.
또 그가 난 집터에서 보면 축(丑) 방향에 바위덤이 보이는데 이 또한 길조(吉兆)는 아니었다고 하며, 조금만 일찍 태어났어도 거룩하게 되었을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부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살던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의 도독실이라는 마을에는 삼백석 지기의 부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와 잠을 자던 묵발이 몰래 집을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이를 눈치챈 아버지가 목발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도독실로 가더니만 부잣집 대문을 손가락으로 열고, 뒷방으로 들어가 돈궤를 열어 제끼는데 역시 손가락으로 돈궤를 열었다.
크게 놀란 아버지는 아들의 목덜미를 잡아 집으로 끌고 왔다.
그런데 부잣집 주인이 잠에서 깨어보니 돈궤가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그 집의 '업'이 운 것이다. 옛날에는 집안을 지켜주는 '업'이 있다고 믿었으며, '업'은 큰 구렁이가 되기도 하고 두꺼비가 되기도 하였다.
놀란 주인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장을 하고 돈궤앞에서 비손을 했으나 '업'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업'은 바깥 바람을 쐬어야 하겠다면서 돈궤문을 열라는 것이었다. 주인이 어쩔 수 없이 문을 제껴주니 '업'은 가정숲으로 갔는데 그만 숲에서 '업'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사 보니 강목발의 집으로 들어 가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는 낮 동안은 평범한 사람과 같이 성장했으나 밤이면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 즉 부잣집에서 도둑을 맞았다 하면 없는 사람 집에 귀물이 쌓이는 것이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한데다 힘 또한 장사였고, 밤이면 높은 담장은 말할것도 없고 삼간집을 펄펄 뛰어넘는, 신출귀몰한 재주를 지녔었다.
어려서 삼촌(아버지가 없었다고도 함)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머리는 좋았으나 글공부를 게을리 하면서도 남의 눈을 속이는 일에는 탄복을 금치 못했다.
어느 날은 그의 숙부가 방바닥에 엽전을 던져놓고 내 모르게 가져보라며 시험해 보았다.
목발은 밖을 잠깐 나왔다가 들어오더니 "숙부님 가져 갑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없어졌다.
목발은 밖에서 발바닥에 보리밥알을 이기어 붙였던 것이다.
주윗사람들로부터 목발이 남의 눈을 속인다 하기에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고 의심했으나 그게 사실이었다.
숙부는 방바닥에 놓인 목침을 들고 그의 다리팍을 내리쳤다. 이때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녔다고 하나 신빙성은 적다.
목발은 성장하여 진주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길목인 단목(丹牧)에 사는 하백립의 집을 종종 털었다 한다. 하백립은 그 당시 꽤 부자로 살았다. 목발이 덜미가 잡힐 일도 만무하거니와 하백립은 목발의 소행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한 두 번도 아니어서 하인들을 시켜 목발을 붙들어 오도록 했다. 목발은 순순히 잡혀와 심한 꾸중을 들은 뒤부터는 손을 씻겠다는 자백을 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하인들이 참지 못하고 당장 죽여버리겠다며 맷돌을 치켜들고는 목발에게 내리쳤다.
맷돌을 내리치는 순간, 목발은 어느 결에 건너편 밤나무에 올라서며 하는 말이 "강목발이 제 길로 갑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목발은 말티고개를 넘어 진주에서 살다시피 했다. 기생집을 드나든 그는 돈도 잘 썼으며 술도 말술인데다 노래와 춤도 일품이어서 당대로서는 큰 인기였다.
그런 그가 하루는 유흥비가 모자라 한 부잣집을 털어 말티고개를 넘어 가는데 어느 산모(産母)가 등성이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의협심이 강한 그는 그 날 밤에 털었던 돈과 귀물을 죄다 주어버렸다.
그런데 도둑맞은 부잣집의 소문이 파다할 즈음에, 무일푼의 여인이 돈을 잘 쓰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돌아 뒤를 캐보니 강목발의 소행임이 밝혀졌다.
관아에서는 목발을 잡아다가 자백까지 받았으나 어려운 임산부를 도운 정상을 생가하며 오른쪽 다리를 끊고는 풀어 주었다.
이때부터 외발로 생활하는 목발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말티고개만 넘어서면 목발은 필요 없는 물건이 되버렸다. 그는 땅을 주름잡는 축지법(縮地法)을 익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진주 인근의 살만하다는 부잣집은 도둑을 맞았고, 대신 가난한 집에는 쌀이며 돈이 쌓였다.
이때부터 의적의 신화는 삼남일대에 번져 나갔다. 문제는 관아의 포졸들이 큰 골치거리였다. 관아에서 피해자들을 불러 조사해 볼라치면, 진술은 한결같이 '외다리'의 소행으로 일치되었다.
관아에서도 그 의적은 강목발이라는 심증이 갔으나 목발에 의지 않는 '외다리'라는데 의문이 생겨 확증을 잡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저러나 강목발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목발을 짚은 채 절뚝거리며 관아에 붙들리는 신세가 되어 옥살이를 해야 했다.
붙들리기는 했지만 목발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태연히 부인했다.
이에 관아의 꾀많은 형리(刑吏)가 있어 목발에게 넌지시 말하기를, "번번이 붙잡고 붙들려 옥살이를 시키는 우리도 귀찮다. 그러니 진양성을 한 식경(10분 정도)에 세 바퀴만 돌면 모든 허물을 벗겨 주겠다"고 했다. 때에 목발은 일생의 실수인 줄 모르고 귀가 솔깃하여 그러마고 했다. 그리고 한 식경 안에 외다리로 진양성을 세 바퀴를 돌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는 형리의 함정에 빠졌고, 꼼짝없이 모든 허물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삼남일대에 번진 의적은 강목발로 판명되었으며, 그는 구 법원 앞 객사(客舍) 뜰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목발이 사형으로 집행되던 날 그 일대는 의적의 최후를 보려고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그중에는 목발의 은혜를 입은 가난한 자들이 그의 명복을 빌고자 모인 사람도 많았다.
때가 되어 형리(刑吏)의 칼이 강목발의 목을 벴는데, 괴이하게도 목발의 목에서는 피만 흐를 뿐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놀란 것은 형리들이었고, 질겁을 한 형 집행관이 일어서 목발을 향해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목발은 대답하기를 "탐관오리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다 못 도우고는 참아 죽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행 집행관은 "관연! 천하에 다시 보기 드문 의적이로다."라고 하니 불사신(不死身)처럼 버티던 의적 강목발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생전에 그는 말티고개를 넘어 다니며 사귄 의누이가 있었다. 의누이는 주막집을 하고 있었는데, 목발이 사형 당하던 날 밤에도 그 곳에 들러 술 한 단지를 마시고 가면서 하는 말이 "내가 진주목사를 죽이고 갈 것이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튿날 목발의 의누이가 들으니, 과연 목발의 말대로 목사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한다.
이러한 강목발의 이야기는 전하는 이마다 서로 다를만큼 그에 관한 전설은 진양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