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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는 고을 원이 아들은 없고 딸만 여럿 낳아 딸들이 모두 컸다. 어느 날 딸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너는 누구 복으로 사느냐?"
한 딸이 말했다.
"아버님 복으로 삽니다."
흐뭇하게 생각해 다음 딸에게 물었다.
"네, 아버님 복으로 삽니다."
다음 딸도, 그 다음 딸도 모두 자기 아버지의 복으로 산다고 대답한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딸에게 똑같이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다르다.
"제 복으로 삽니다."
전혀 뜻밖의 대답에 다시 물었다.
"내 복이 아니고 네 복으로 산단 말이냐?"
"네. 분명히 저는 제 복으로 살지 아버님 복으로 살지 않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당장 딸을 집에서 쫓아내고 말았다.
그래도 달을 쫒아내는 어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패물을 몸에 지녀 줘 당장 살기에는 걱정이 없도록 해주었다. 집에서 쫓겨난 막내딸은 정처없이 길을 가다 깊은 산골의 숯 굽는데까지 가게 됐다. 마땅하게 갈 데가 없는 그는 숯 굽는 곳에서 밥도 짓고 빨래를 해주며 살아가다 그곳의 숯굽는 사람과 정이 들어 혼례를 치르고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그녀는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위해 밥을 해다 나르고 같이 숯굽는 일을 거들기도 했는데 이것도 내 복이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밥을 광주리에 담아 이고 남편의 작업장에 갔다. 불을 때던 남편이 밥을 먹을 동안 아내가 숯가마에 불을 대신 때는데 아궁이로 쌓은 돌이 이상했다. 새까맣게 검정칠이 되어 있지만 그냥 돌과는 뭔가 달랐다. 부지깽이로 검정을 벗겨 보니 이건 돌이 아니다. 누런 황금덩어리다. 부지깽이로 이것 저것 검정을 벗겨 보니 모두가 금덩이다. 그는 그만 불 때는 일을 중단하고 남편더러 숯가마를 부수자고 한다.
"그게 무슨 소리요. 세상에 숯 구워 먹고 사는 놈에게 숯가마를 부수라니."
"아무말 말고 그렇게 하세요. 다른 사람이 알면 안되니까 아무도 몰래 그렇게 하세요."
남편은 자기의 아내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 일만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남편은 평생 숯굽는 일만 하다 보니 금덩이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인데 여러 날 동안 아내와 실랑이를 하다 결국 부수기로 했다.
그리고 돌이 아닌 금덩이를 씻어 방안에 가득히 보관해 놓고 남편더러 금덩이 몇 개를 지게에 지라고 한다.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짊어지니 아랫마을의 김부자를 찾아가 보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과 더욱이 이런 게 집에 많이 있다는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어쨌든 남편은 금덩이를 지고 김부자 집을 찾아가니 깜짝 놀란 김부자는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한다.
"야 이사람아, 왜 그냥 서 있느냐. 어서 내려 놓고 올라오지 않고."
호들갑을 떠는데 남편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아, 그걸 내게 주면 요 앞의 논을 주마."
남편은 김부자의 이런 제안에도 대답이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야 이사람아, 그럼 저 논하고 이 집을 주겠네."
그래도 말이 없자 이번에는 더욱 안달이 나서 전답문서, 집문서, 종문서까지 다 내준다.
이렇게 해서 김부자는 금덩이만 갖고 다른 데로 이사가고 그 집은 숯굽던 무식쟁이가 들어 앉았다.
염천에도 불을 피우며 숯을 굽던 사람이 졸지에 고대광실에서 하인을 부리며 살게 됐으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아니 이젠 마님 소리를 듣게 된 아내가 남편을 불렀다.
"영감, 이제 여기다 문을 하나 달아야겠는데 목수 한 사람 구해 오세요."
아내 덕에 팔자를 고친 사람이 무슨 짓인들 못할까.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수소문을 하니 목수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그러자 마님은 돈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시나나' '시나나'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 달란다.
엉둥한 주문에 다른 목수들은 그냥 돌아가고 오직 한 사람만이 나서서 과연 그런 소리가 나는 문을 만들었다.
문을 열 때도 '시나나' 닫을 때도 '시나나'하는 게 어찌 보면 신기하고 어찌 보면 소름이 끼치기도 하지만 마님이 좋아하니 어느 누구도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한편 마님의 친정은 집안이 망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기를 쫓아 낸 아버지라도 자기의 핏줄이니 그립지 않을 수 없었고 부모와 형제의 안부가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은 문 여닫는 소리를 듣고 괴이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하루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이 지나가다 문소리를 들었다.
'허 거참, 희한한 소리를 내는 문이구먼.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그 소리가 꼭 내 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같으니.'
그러면서 가던 길을 멈추고 혼자 중얼거린다. 노인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하인이 마님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래 어떻게 생겼더냐?"
"키는 크고 눈 옆에 큰 사마귀가 있더이다. 그러나 행색을 보니 거렁뱅이였습니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마님은 다시 이른다.
"얼마나 배가 고프겠느냐. 사랑방으로 모셔 음식을 잘 차려 드려라. 그리고 영감마님 오시라 해서 의관 정제하고 기다리시라 해라."
주섬주섬 몇 가지 일러 놓고 자신도 좋은 옷으로 갈아 입은 후 남편과 함께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아버님, 절 받으소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남편을 손짓해 큰절을 올리니 놀라는건 거렁뱅이 영감이다.
"아버님이라니...... 그리고 그 절은 또 웬일이오?"
하면서 따라 절을 하려는데 그때야 마님이 영감의 손을 잡으며 그동안의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제서야 그의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지난날의 사정을 얘기한다.
"네 말이 괘씸해 널 쫓아낸 후 집안이 망하더구나. 네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나니 세상살이가 하도 허망하고 네가 제일 보고 싶대. 그래 죽기 전에 네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이렇게 떠돌아다녔는데 이렇게 잘살고 있는 너를 보니 반갑고도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겠구나. 그래 네 말이 맞았어. 너는 네 복에 살고 나는 재 복에 사는 게 틀림없어."
그렇게 해서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잘 살았다는데 그의 딸 이름이 '시난'이었고 딸은 그의 아버지가 이름 소리를 듣고 찾아올 것이란 생각에서 문소리가 그렇게 나도록 만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