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板門) 마을은 삼국시대 석(昔)씨들이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동리밖에 판자로 울타리를 치고 동쪽으로 문을 내었다고 하여 판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 정조 때에 달성서씨와 화순최씨 진양정씨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하며 마을 아래에 백년 된 느티나무가 그리고 마을 위에 오십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다. 지금은 여러 성씨가 대를 이어 살고 있으며 마을 진입도로도 깨끗이 포장되어 살기 좋은 마을이다.
평거동에 소재하고 있는 골짜기는 옛날부터 감 산지로서 많은 감나무가 재배되고 있었다.
평거동 산 44번지 2호에 있는 고려 때의 무덤이다.
본동에 남강변에 있다. 지금도 굴바구라고 한다.
본동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본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본동 남쪽에 있는 더미이다.
본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역이 있었다.
들판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들말이라고 한다.
본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본동 서북쪽에 있는 우물로 위에 못이 있었다.
본동 중앙에 있는 높이 3m의 미륵이다.
이 마을에는 송씨라는 유력한 사람이 살면서 매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매화나무는 없어 지고 송시를 기념하는 조그만한 정자만이 남아 있다.
조랫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지형이 조리같다는 뜻으로 이 마을을 조랫골이라 한다.
이 골짜기에는 고목이 많아 지초(至草), 즉 버섯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 지초를 영지(靈芝)라고도 하는데 이 영지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으로 불리고 있다.
본동 서쪽에 있는 평평한 골짜기이다.
본동 앞에 있는 우물이다.
구분 | 현행행정 구역 명칭 | 시대별 명칭변천 현황 | 명칭유래 | ||||
---|---|---|---|---|---|---|---|
삼국 및 통일 신라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일제시대 | 대한민국 | |||
시·도 | 晉州市 平居洞 |
|
|
晉州牧坊里 西面 平居里 (朝鮮朝前期)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