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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리

1914년, 진주군 정촌면 호탄동(井村面 虎灘洞), 원촌동(院村洞) 각 일부, 정동(鼎洞), 대방동(待榜洞), 문산면 옥산동(文山面玉山洞)으로서 옥산리(玉山里)라 하고, 정촌면(井村面)에 속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1973. 3.12공포)에 의하여 문산면으로 편입되었다.

정동(鼎洞)

마을 부근 지세(地勢)가 가마솟 같이 생겼다고 솥정(鼎)자를 따서 정동마을로 이름지어지고 정(鄭)씨가 많이 모여살고 있다.

솥바위

가마솥을 얹을 수 있는 삼발바위가 있어 솥발바위라 불려져 오다가 줄여져 불리는 이름이다.

솥골

솥바위가 있는 정동마을을 솥골이라고 한다.

원촌(院村)

옛날 서원(書院)이 있던 마을이라고 원(院)자를 따서 원촌마을이라 이름되고 진주시와 경계(境界)를 이루는 고개가 있으며 지금은 배(梨) 주산단지로 농가 50여호에서 생산하는 량(量)은 약 4천 톤으로 판매액은 거의 5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또 원촌배라고 하여 지방시장은 물론 서울 청과시장에서도 이름 나 있다고 한다.

수리산

산세가 독수리 모양이라고 한다.

나랏골

옛날 이곳에서 삼(삼)을 많이 심어서 살았다는 골짜기이다.

여시바위

오륜산 중턱에 있는 바위인데 여시(여우)가 많았다고 한다.

열두대문터

마을 안쪽에 있는 터로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옛 서원에 드나드는 12대문 자리라고 한다.

오륜산

수리산 밑에 오륜골에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다섯 사람이 여러 가지 의논을 하였던 곳이라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촌(新村)

옛날부터 토박이들은「새몰」이라고 부르는데 새마을의 사투리이며 한자로 신촌 마을로 되었다. 또 옥산(玉山)이라 하는데 이 옥산은 산이 나지막하고 동그랗하게 구슬같이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고 풍수설에는 신초마을에서 건너 용두산을 바라보면 꼭 죽은 남자를 일곱군데로 염 해놓은 것 같이 보여서 이 마을에는 소녀과부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화를 면하기 위하여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고 새롭게 살기 위하여 「새마을」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어귀에는 숲이 있다.

감나무골

골이 깊고 감나무가 많이 있으며 지금도 가끔씩 옛날 기와가 하나씩 나온다고 한다.

마구할매서답돌

마을 서쪽 왕개봉 중턱에 있는 바위로 20여 개나 땅속에 파묻혀 있다고 한다.

무등

마을 뒤편에 있는 산등성이다.

방아골

연자방아가 있어 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이괄성(李适城)

마을 서쪽에 있는 성터인데 내용을 아는 이가 없다.

대호(待虎)

「대배미」라고도 부른다. 염소를 많이 길르며 대방마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산면으로 편입되면서 정촌면 대축리 대방과 구별하기 위하여 대호마을이라고 이름지었다.

방아골

마을 서북쪽에 연자방아가 있었으므로 지어진 이름이다.

떡고

옛날 동물사람이 장가를 갈 때 갓골에서 갓을 쓰고 가매골에서 가마를 타고 떡고개에서 떡을 먹었다고 전하여지고 있으며 떡먹던 고개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돌고

대호마을 동쪽에 있는 고개로 신촌과 문산을 통하는 험한 덤 길이 있고 그 아래로 영천강이 흐르고 있으며 고개 마루에 큰 바위가 길 양편에 서 있고, 하나는 고개 너머로 누워있는데 기울어지는 쪽의 마을은 소년 죽음을 많이 당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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