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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리(上村里)

상촌마을은 진주목시대에는 반동산리(班東山里)의 일부였으나 고종 32년(1895)에 지방 관제개정에 의하여 가좌촌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성면 상촌리가 되었다. 현재의 교동(校洞), 상동(上洞), 예음(禮吟) 등 3개 자연 마을이 곧 상촌리이다. 본 면 중앙에 있다. 교동(校洞) : 교동마을은 상촌리 남쪽에 위치하고 1992년 이전에는 면사무소 소재지이며, 1933년에 창립한 진성초등학교가 있다. 농가 24호, 비농가 9호로 주민 96명이 살고 있다. 씨족분포는 파평윤씨(坡平尹氏), 남평문씨(南平文氏), 칠원제씨(칠原諸氏), 능성구씨(陵城具氏), 광주노씨(光州盧氏), 경주최씨(慶州崔氏), 분성배씨(盆誠裴氏), 김해허씨(金海許氏) 등으로 형성되고, 현 초등학교 설립 이후부터 교동이라 한다.

천황산(天皇山)

마을 서쪽에 있는 산이다.

애태고개

문산면과 진성면의 경계되는 고개이다. 소가 누워있는 모습이라 한다.

용수골(龍水谷)

천황산 아래 골짜기이다. 용이 물을 찾아든 골이라 한다.

승지골(承旨谷)

마을 서쪽에 승지 벼슬을 한 사람이 살던 곳이라 한다.

도독골(都督谷)

마을 서쪽에 있다. 옛날 도독 벼슬한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띠방들

마을 북쪽에 있는 들녘이다.

모방산(茅方山)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지금은 공동묘지이다. 띠(잔디풀과에 속하는 풀 이름) 가 잘 자라는 골이라 한다.

명사골

동쪽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우골(牛谷)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혹은 황소골이라고도 한다.

오리골(五里谷)

동쪽에 있다. 오리(오리)쯤 되는 큰 골짜기이며 1950년 저수지가 축조되었다.

섬들

오리골 안에 있는 들판을 말한다.

밭골

전(田)만 있는 골짜기이다. 지금은 답(沓)도 약간 있다.

장자골

오리골 안에 있는 골이다. 옛날 부자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무시골

오리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이다.

달팽이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누링이재

동쪽에 있는 산고개이다. 마을 사람들이 일반성 시장으로 가는 길이며, 조산(작은돌 모으는 곳)이 있다.

교동지(校洞池)

마을 뒤 용수골에 있는 건못이다.

오리골못(五里谷池)

마을 동쪽 오리골에 있다. 정부보조금과 자체부담으로 만든 소류지이다.

맷돌골

오리골 안에 잇는 작은골짜기이다.

체봉골(替封谷)a

마을 동쪽 오리골 안에 있다. 조선시대에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기전에 임시로 외봉(外封)하던 골짜기이다.

섬지골

오리골 안에 있는 골짜기이다.

소매등

오리골 안에 있는 골짜기이다.

정골

오리골 안에 있는 골짜기이다.

엄산골

오리골 안 음지에 있는 골짜기이다.

웃갓골·아랫갓골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수박등

수박등같은 산고개이다. 마을 동쪽에 있다.

진성골(晋城谷)

마을 동남쪽에 있는 산고개이다. 내진성(內晋城)과 외진성(外晋城)이던 때에 면민이 왕래하던 골짜기이다.

상동(上洞)

상동 마을은 택동(澤洞), 웃동산(上洞山), 못골(池谷) 3개 동리로 형성되어 있다. 북으로는 예음마을과, 남으로는 교동마을을 경계하여 상촌리 중간에 위치하고, 농가 42호, 비농가 34호로서 농공단지가 생기면서부터 농가호수가 많이 줄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택동(澤洞)이던 것을 1990년에 상동으로 개칭하였다.

택동(澤洞)

이 마을은 상동 서북편에 있는 마을이다. 고려시대에는 어기태(漁基台)란 전설이 있고, 진양지에는 택지동(宅只洞)이라 하였으며, 현지 주민들은 태기태하고 한다. 재령이씨(載寧李氏), 김녕김씨(金寧金氏), 칠원제씨(漆原諸氏)가 살고 있다. 망릉북쪽 동후산(洞後山)에 어정승묘(魚政丞) 묘로 칭하는 큰 폐묘가 있다.

웃골(上谷)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지금은 단감나무골이라 한다.

절골

마을 남쪽에 있는 산골이다. 옛날 절이 있었다 하여 현지 주민들은 사태골 이라한다.

웃동산이(上東山)

진주목(晋州牧) 반동산리(班東山里)시대헤는 윗쪽에 있어서 상동산(上東山)이라 하였다.

택동지(澤洞池)

마을 서쪽에 있다. 정부보조금과 지원부담금으로 만든 저수지이다.

터어골

택동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이다. 주민 5·6가구가 살고 있다.

목넘애

택동 동편쪽에 있는 작은 동네이다.

방목골(放牧谷)

택동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목동(목동)들이 소를 방목하는 곳이다.

봉산골(鳳山谷)

부엉이새가 서식(서식)하는 골짜기라 전한다.

십장골

택동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피이골·뿔당골·밀장골

택동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법영골(法靈谷)

옛날 법령사가(法靈寺)가 있었다 한다.

참대밭골

택동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용기미골

용고미마을로 가는 길이 있는 골짜기이다. 택동마을 서쪽에 있다.

장밭

옛날 시장(시장)이 있었다 한다. 1990년 3만평 규모의 농공단지가 조성되었다.

명산골(名山谷)

어정승 묘가 있는 골짜기이다. 택동 북쪽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감낭골

동쪽에 있는 골자기이다.

들비산

동쪽에 있는 산이다.

큰대밭골·삼밭골·지름재골·변소골·신지골·광지방들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와 들판이다.

새짓골

상동마을 동쪽에 있다.

똥뫼산

야중산(野中山)으로서 마을 가운데 있다.

숙박등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이다.

학당산(鶴堂山)

황새가 많이 서식하는 산이다. 마을 앞에 있다.

못골(池谷)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주민 5·6 가구가 살며, 옛날 전주이씨가 살았다 한다. 지금은 진주골프장이 32만평 부지에 18홀, 사업비 577억원을 들여서 완공단계에 있다.

강주들

마을 북쪽에 있는 들판이다.

예음(禮吟)

예음 마을은 상촌리(上村里)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목(晋州牧)시대에는 가좌촌면 반동산리(加佐村面班東山里)에 속했으며, 호산(狐山)이라 하여 지금은 여시미라 한다. 농가 32호, 비농가 56호에 주민 301명이며, 전주이씨, 재령이씨, 함안이씨 등 여러성씨가 살고 있으며, 국도2호선과 남해안 고속도로의 진입로가 마을앞을 지나므로 진성면 교통중심지역으로 주민 대부분이 상업과 직장인 이어서 류동(流動)인구가 많은 곳이다. 호산(狐山) 또는 예산(禮山)이라고도 한다. 1992년에 면사무소, 지서, 보건지소가 교동(校洞)에서 이전되었다.

여시미

호산(狐山)의 별칭이다. 지세가 여우모습 같다고 한다.

모랭이골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다 한다.

숫박들

모랭이골 밑에 있는 들이다. 숲 밖에 있다는 뜻이다.

산지골·갓골

마을 뒷산 양 골짜기 (북쪽은 산지골, 남쪽은 갓골)이다.

구리얍딱

아을 남족에 있는 산이다. 옛날 초부(草夫)가 풀을 베다가 잠이들어서 깨어나보니 15일동안 잠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풍수학적(風水學的)으로 명당(明堂)자리라 한다.

진등골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낙모지(落帽池)

마을 동쪽에 옛날 낙모정(落帽亭)이 있었으며, 판서(判書) 강혼(姜渾)이 이름지었다 한다. 진양지에 보인다.

가장골

낙모지 안골짜기이다.

시루봉모퉁이

증산(甑山) 북쪽 절벽덤으로 떡시루 모양의 山이다.

애기소

시루봉산 서쪽 절벽 아래까지 옛날에는 배가 들어왔다하며, 수심이 깊은 소가 있어 (玉)이란 유녀(遊女)가 실연하여 투신자결했다는 전설이 있다.

숲박들

마을 북쪽에 있던 방풍림(방풍림)이었다. 본시는 울창하였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 다. 마을앞 국도변에 면사무소와 경찰지서가 있고 또 진성농협은 1990년에 신축이전하였다. 노인복지회관도 신축하였다.

밥봉(飯峯)

마을 앞산이다. 그릇에 밥을 담은 모습과 같다.

대문간(大門間)

마을 북쪽에 있다. 옛날 어씨(漁氏)들 터라 한다.

갓골

마을 남서쪽에 있는 관(冠)모양의 산이다.

솔숲터

마을 동쪽에 있다. 1950년초에 5일장이 개설되었다가 1960년초에 폐쇄되었다.

방앗간터

마을 남쪽에 옛날에 소의 힘으로 움직이던 방앗간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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