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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리는 진성면 남단에 있고, 고성군 영오면과 일반성면 남산리를 경계하며, 두소(杜蘇), 대사(大寺), 백암(白岩) 3개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1914 이전에는 내진성면 대사동(大寺洞)·두수동(杜水洞)·백암동(白岩洞)이었고, 지금은 행정단위로 대사(大寺), 두소(杜蘇) 양 마을로 되어 있다. 현 백암동(白岩洞)에는 신라(新羅) 때 백암사(白岩寺)가 있었다 한다.
대사 마을은 대사와 백암 등 2개 마을로 나눈다. 본래 진양 정씨(晋陽 鄭氏) 선의 후손이 최초로 입촌하였다가 그 후 여러 성씨가 모여 살며, 농가 70여 호와 주민 250명이 미맥(米麥)을 주산물로 하여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사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1960년대에 대사에서 행정마을로 분동 되었다가 지금은 대사 마을에 병합되어 있다.
대사(大寺) 분동 아래위 마을이다.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다. 일면 곰나등이라고도 한다. 월아산 주위의 8 명지 중 하나이다.
대사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서식곡이라고도 한다.
마을 남쪽에 있다. 맑은 연못이다.
마을 남쪽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분지(盆地)로 되어 있다.
대사마을 남쪽에 있다. 가마 같은 바위를 말한다.
남쪽에 있는 산이다. 둔등산이라고도 한다.
한직골 마을 앞에 있다. 왜정시대 말기에 지원금과 강제부역으로 만든 저수지이다.
매화등이라고도 하며 남쪽에 있다.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북쪽 땀(마을)이다.
마을 뒷산 봉우리이다.
마을 남쪽 골짜기이다.
동남쪽에 있다. 옛날 산삼이 있었다 한다.
옛날 탑(탑)이 있었던 골짜기이다. 지금도 탑터가 있다.
옛날 삭령최씨(朔寧崔氏)가 살았다는 골짜기이다.
마을 서쪽에 있는 산이다.
마을 서쪽에 있는 산이다. 도동(道洞)으로 넘어가는 산고개이다.
백암(白岩)마을 골짜기이다. 길이가 구리(九里)쯤 된다하여 구리곡이라 한다.
구골(九里谷)안에 있는 골짜기이다.
구리골안에 있다. 산다래가 자생(自生)하는 골짜기이다.
구리곡 입구에 있는 골짜기이다.
백암동(白岩洞)서쪽에 있다.
신라시대에 사찰이 있었다고 하고, 옛날 지도에 명기되어 있는 유명한 고개이며 고성군 영오면과 경계지점이다.
마을 남쪽에 있다. 옛날 용이 살았다고 한다.
마을 북쪽에 있다. 백암이란 지명이 이 바위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묘지로는 명당자리라 하여 땅을 파면 혈(血)이 나온다는 설이 있다. 마을 동쪽에 있다.
일명 잉어설이라고 한다. 진양정씨 자손들이 인공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 남쪽에 있다. 고성군 양산과 경계이다.
백암에 주거하는 진양정씨가 약 800년 전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못안골에 살다가 임란후에 현재 주거지인 백암으로 옮겼다고 한다.
대사리 북편에 위치하고 농가42호, 비농가 6호가 있다. 동쪽의 남성(南星)골과 2개 마을로 형성되어 미맥을 주산물로 하고 있다. 신라시대에 두씨(杜氏)와 소씨(蘇氏)가 살았다는 설이 있으며, 조선조 초기에 교리를 지낸 남의(南椅)가 입향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후 김해김씨, 경주최씨등 여러 성씨가 입촌하여 살고 있다. 1910년대에는 면사무소가 있었다.
두수동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두씨(杜氏)와 소씨(蘇氏)가 살았다 한다. 지금은 의령남씨 집단 마을이며, 아랫 마을은 김해 김씨, 경주 최씨 등도 살고 있다.
마을 서쪽 산고개이다. 1970년대까지는 면사무소, 경찰지서로 가는 고개였다.
큰고먼당 아래고개이다.
두소마을 앞산이다.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시체를 매장하기 전에 임시로 외봉(外封)하는 골짜기이다.
남쪽에 있는 시냇물을 말한다.
북동쪽에 있는 들판이다.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북쪽에 있는 평야이다. 이곳 들 가운데 대온초등학교가 1953년에 설립되었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어정승 묘(魚政丞墓)로 전하는 고총이 있다.
피골안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모시밭이 많은 골짜기이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인삼을 재배한 곳이라 한다. 남성골(南星谷) 동쪽에 있다. 주민 10여호가 사는 골짜기이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남쪽에 있다. 누에(蠶)머리와 같은 산등성이다.
남쪽에 있는 산모랭이이다.
남쪽에 있다. 면사무소가 있던 곳이며, 주민 10여호가 살고 있다.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지곡정(止谷亭)을 처음 세웠던 곳이다.
선이골 안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남쪽에 있다. 자라모습의 산등(山嶝)이다.
망미산(望未山) 밑에 있다. 정여문(旌閭門)이 있어서 이르는 것이다.
정여문(旌閭門) 앞길을 말한다.
두소마을 서편 뒷산이다.
마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30년전까지 주민이 살던 곳이다.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옛날 진주영장(晋州營將) 묘가 있다.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지금은 공동묘지가 되었다.
마을 동쪽에 있다. 이곳에 이정승의 묘라고 전해지는 큰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