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진리는 진성면 최북단에 있어 남강을 경계로 북으로는 대곡면과 동으로는 사봉면, 서로는 금산면을 접하고 있다. 진주목 시대에는 가좌촌리 였는데 1895년에 가좌촌면으로 승격하고 1914년에는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가좌촌면 하촌동(下村洞) 일부로서 하촌리(下村里)라 하고 진성면으로 편입되었다. 1993년 7월 1일 자로 가진리(加津里)라 개칭하였다. 진동(津洞)과 가좌(伽佐) 2개 행정 단위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김령김씨 세거장(世居庄)이며,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1994년 12월에 착공한 낙동강연안개발사업으로 길이 2.8km, 몽리 면적 44.3ha, 사업비 26억 3천만 원으로 1995년 말에 완공되었다. 가진리 평야 농경지 50% 이상이 편입되었다.
가진리 남쪽지역이다. 남강과 목계천(木溪川)이 합류하는 곳으로 비옥한 평야를 낀 집단마을이다. 농가 49호, 비농가 11호, 주민 182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김령김씨(金寧金氏)의 세거장이기도 하다. 1500년대에는 남강이 마을 앞 용두산 밑으로 흘렀으나 지금은 대곡면 마진리 앞으로 변천되었으며, 성종·연산군 시대에는 파산 이씨 촌이었던 곳으로 알려졌다.
파산 이씨(巴山 李氏) 매헌 이인형(梅軒李仁亨) 선생이 야인으로 계실 때 수신하던 용두정(龍頭亭)이 지금도 초라한 모습으로 있다.
마을 남쪽 평구들일대에는 1994년 12월 10일에 착공한 경남학생교육센터 공사가 진행 중이며 1998년에 준공예정이다. 사업규모는 과학고, 체육고, 국제고의 3개 고교와 과학교육관, 학생박물관의 2개 부속건물이며 사업비는 599억 원이다.
마을 앞 동쪽에 있다. 큰 나무 세 그루가 솟다리처럼 서 있다.
월아산 국사봉 동쪽에 있다. 석성(石城)이 있어 지금도 옛 모습이 남아 있다.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다.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남쪽 중촌리로 가는 골짜기이다.
마을 북쪽 가좌로 가는 고개이다.
남쪽 언덕바지다.
마을 앞산이다.
북쪽 가좌(伽佐)로 가는 낮은 고개이다.
남쪽에 있다. 도독(都督)이라는 관직에 있던 사람이 살았다는 설이 있다.
마을 남쪽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남쪽 골짜기이다.
옛날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남쪽 산골짜기이다.
동쪽에 있다. 남강이 북으로 변천되면서 생긴 땅이다.
마을 동쪽에 있었던 돌다리이다. 지금은 없어졌다.
마을 동쪽에 있는 늪이다.
동쪽에 있는 들이다. 혹은 동드리라고도 한다.
동남쪽에 있다. 목계천변의 들이다.
마을 앞에 있다. 옛날에는 주막이 있어 오래동안 번창하였다 한다.
마을 남쪽에 있다. 옛날 강씨(강씨)들이 전용하던 우물이다. 지금은 작은 연못이다.
남쪽에 있는 들이다. 비만 내리면 땅이 질퍽하다는 뜻이다.
마을 북쪽을 막고 있는 산이다.
북쪽에 있는 산이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약 100년 전까지는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진양지에 보임)
마을 동쪽에서 반야동으로 가는 고개이다.
동쪽에서 지수면과 사봉면으로 건너는 나룻터이다.
서쪽산 고개이다. 진주로 통하는 월아산 고개이다.
가좌마을은 가진리 북편에 위치하고 있다. 농가 84호, 비농가 12호, 주민352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김령김씨(金寧金氏), 금산김씨(金山金氏), 광산김씨 (光山金氏) 등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진주목 가좌촌리 시대에는 리수(里首)가 있었으며, 가좌촌면 시대에는 면소(面所)가 있었다. 마을 서쪽은 월아산이 둘러있고, 북쪽은 남강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 비옥한 평야를 앞에 둔 집단촌이다. 일찍부터 보온시설(保溫施設)로 특수농작물을 생산하여 부촌(富村)이 되었다. 서쪽 월아산 음지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장군(金德齡將軍)의 의병교련장과 목책성(木柵城)터가 있어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 북쪽에는 남강을 건너는 도선장(나룻배)이 있었으나 지금의 월강교(月江橋)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마을 북쪽에 있는 깊은 골짜기이다. 현지주민은 궁잉이골이라 하며 지금은 정암산업(正岩産業)이 대단위 공장을 설치하여 가동중이다.
월아산 밑에 있다. 임진왜란시 의병들의 말집터이다.
마을 북쪽에 있다. 옛날 조를 많이 심던 곳이다.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북쪽에 있는 산이다.
북쪽에 있는 산이다.
서북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호랑이가 엎드린 모습이다.
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북쪽에 있다.
마을 서북쪽에 있다. 지금도 손을 대면 흔들린다.
서쪽에 있는 넓은 바위이다.
서쪽에 있는 골짜기 들이다.
남쪽에 있다. 옛날 서재터가 있던 골짜기이다.
남쪽에 있는 산등성이다.
남쪽에 있는 골짜기들이다.
남쪽에 있다. 지금도 정자가 있다.
마을 앞 야중산(野中山)이다.
남쪽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나비모습이라서 묘소에 석물을 설치하지 못한다는 설이 있다.
마을 앞 들녘이다. 자갈이 많다는 뜻이다.
똥뫼산 주위의 들녘이다.
동쪽에 있다. 남강 나룻배가 있는 곳이다.
북쪽에 있었던 숲이다. 지금은 경지정리 사업으로 없어졌다.
마을 동남쪽에 있다. 옛날 큰 연못 터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약수정물이라 한다.
북쪽에 있다. 현재 정암산업사 자리이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북쪽에 있는 산이다. 지금은 골재채취장이다.
대곡면 가정리(佳亭里)로 건너는 뱃길 터이다. 지금은 월강교(月江橋)가 생겼다.
북쪽 강언덕 절벽을 말한다.
북쪽에 있다. 효렬비(孝烈碑)가 있는 산이다.
옛날 흉년에 쑥을 가꾸었던 자리라 한다.
마을 앞 동쪽에 있는 야산이다.
마을 북쪽 산록에 있다. 물맛이 쓰다고 한다.
마을 남쪽에 있다. 옛날 산사태로 인하여 생겼다고 한다.
마을 남쪽에 있다.
마을 남쪽에 있다.
마을 동쪽에 남강을 건너는 나룻배터로 가는 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