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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지리

1914년 진주군 성태동면 관지동, 신촌동 일부로서 관지리라 하였다.

관지(觀旨)

광제천(廣濟川)과 태천(台川)이 합류하는 곳에 산을 등지고 아늑한 한 마을이 있으니 이곳이 관지마을이다. 옛 촌명을 태동(台洞) 또는 관점(觀店)이라 하였으니, 앞산과 뒷산 송림에 황새가 많이 모여 앉아 마을의 정취를 더해줌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는 본 부락 큰 마을과 옻밭, 섬말, 관음정을 통틀어 관지라 한다. 이 마을에는 진양하씨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으니, 하씨들의 선조인 하공효(河公孝)가 약 400년 전인 선조 33년(1600)에 처음 전거(奠居)하였고, 그의 아들 하진(河溍, 號 台溪)이 벼슬에서 물러나와 시내 위에 태계정이란 정자를 짓고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오랜 세월속에 옛 정자는 없어지고 동정거리라는 옛터 이름만 전해 오더니 80년전인 1911년에 사림들과 후손들이 협력하여 옛자리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태계정을 중건하였고, 또 그의 문집 판각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마을 남쪽에는 임연정(臨淵亭)이란 정자가 있으니 하씨집안의 서숙으로 몇 년전 까지만 해도 글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마을 형태도 옛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으니 동리앞으로 활 모양을 이루며 흐르던 시냇물이 1946년에 직강되었고, 1962년에 수해를 입어 새마을 사업과 더불어 마을 안길이 지금의 정자(井字)길로 확장되었다. 본 마을 서편에 있는 옻밭에는 옻나무가 많이 자생하였다고 하며, 옛날에 전의이씨(全義李氏)들이 울리고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한집도 없고 다른 성씨가 네댓집 살고 있다. 시내건너 남쪽에 있는 섬말은 큰물이 들면 사면이 강이되기 때문에 불러진 이름이며 네댓집이 살고 있다. 동남편에 있는 관음정(鸛吟亭)은 황새가 울며 날아간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니 오래전부터 밀양박씨들이 살아왔으며, 명석초등학교(현재는 폐교)가 이곳에 있다. 관지는 전후좌우로 경지면적이 넓은편이니 마을앞 남쪽을 고래들(鯨坪: 큰들이란 뜻)이라 하고,동쪽을 대정들이라 하고, 북쪽을 나들이들(벗어난다는 뜻)이라 하고, 섬말 앞들을 굼들이라 하고, 서쪽을 모팅이들(隅坪:모퉁이에 있다는 뜻)이라 부른다.

숲뒤

마을 북쪽에 대밭과 함께 수백년 된 고목이 숲을 이뤄 방풍림이 되니 이것을 숲 이라 하고 그 위를 숲 뒤라 한다. 예전에는 서재와 함께 34호의 인가가 있었다.

쇳골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 문헌에도 나오는 지명이다. 옛날에 진양 강씨들이 울리고 살았다고 하며 지금도 전답에서 와편이 출토된다.

강도산

마을 앞산이다. 강도사(姜都事)의 묘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쇳골의 강씨 들이 여기에 산소를 쓰고 부자로 살면서, 중이 오면 동량을 안주고 심히 구박만 하였더니, 하루는 고승이 찾아와서 강도산의 선산을 조금 내려쓰면 더욱 부귀하겠다 함으로, 그 말대로 하였더니 일시에 망해 버렸다고 한다.

밭골

강도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추동.왕지로 가는 재가 있다.

다부랑고개

쇳골서 밭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못골(池洞)

예전에 못이 있있다고 하며, 근년까지 인가가 몇 집 있었다. 속등을 부산등 이라 하니 명지라 하며 비실로 넘어가는 재가 있다.

진웅등(進雄燈)

마을 남쪽에 있는 산등성이다. 냇물이 석벽을 받으며 흘러 깊은 쏘와 급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배향골(拜向谷)

산세가 좋아 중이 지나가며 절을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산 으로 가는 산등성이가 있어 진등이라 하고 비실로 가는 재가 있다.

신촌(新村)

어느때에 어느 성시가 들어와서 새 마을을 이루며 살아 신촌이란 촌명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옛 문헌에 성태동의 속방에 신촌이란 촌명이 있는 것을 보면 오래된 마을이다. 밀양손씨가 제일먼저 들어오고, 다음으로 능성구씨가 들어왔다 하며, 김녕김씨와 진양강씨들도 살고 있다. 본 마을이 도로변을 따라 길다랗게 형성되어 있고, 이외에 여러 땀이 주위에 산재해 있으니, 동쪽에 있는 작은 메조골에 4.5호의 농가가 살고 있고, 다리건너 주걸정에도 네댓집 살고 있다. 동리 남쪽에 있는 마을을 정자마을 또는 담장모티라 하니 예전에 정자가 있었다 하며 7,8호 농가가 도로변에 연이어 있고, 건너편 금동골에도 대여섯집이 살고 있다. 마을 앞에 길다란 들이 펼쳐져 있으니 북쪽을 진웅등들이라 하고, 정면에 있는 들을 묘종견래(猫從犬來)들이라 하니, 들 서편에 고양이가 쥐를 쫓고 개가 쫓아오는 형국의 산이 있어 개에 쫓기어 고양이가 쥐를 놓쳤다는 뜻에서 이런 들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남쪽의 정자마을 앞들을 학들이라 하니 들 전체가 경리정리와 관개시설이 잘 되어 농사짓기가 편한 곳이다

큰 메조골

작은 메조골 위에 있는 공짜기이다. 골안에 옥천내 밭골과 무당골이 있다.

방아등

작은 메조골 안에 있는 등이다. 주위에 큰골과 바른골이 있다

화령골

주걸정 윗편 골짜기이다. 골이 깊고 후미치다

상여골

금동골 밑에 있는 골짜기이다

뒷골, 웃뒷골

마을 뒷편 골짜기이다. 뒷골 위에 웃됫골이 있다.

삭평(朔坪)

마을앞에 큰 들이 펼쳐져 있어 삭들이라 한다. 지대가 저습하여 추수기에 조금만 비가 와도 싹이 잘 남으로 부르게 된 이름이며, 촌명 역시 이를따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약 200년전부터 진양강씨들이 살아 왔으며 지금도 집단으로 살고 있다. 마을 건너편 골짜기를 부처골이라 하니 인가가 45호 있으며,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세미골이라 하니,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큰 부자가 날터이라고 하였는데, 면사무소가 들어서서 수천석의 양곡을 받아 재게됨에 지명과 일치하였다고 한다.

살터모퉁이와 어등

마을북쪽 신촌과 맞닿은 지역에 골안이 병목같이 좁아서 흡사 고기 잡는 살을 놓아도 되겠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살을 놓으면 고기가 오른다는 의미에서 옆에 어등이란 곳이 있다

국사봉

마을 뒷편에 있는 높은 산봉우리이다. 상봉에 봉화터가 있으며 기암괴석이 서려있고 사방을 멀리 관망할 수 있어 진주가 한눈에 보이고 멀리서 보면 흡사 붓을 꽂아 놓은 듯함으로 필봉으로 여긴다

삭들보

마을 앞에 있는 보이다. 삭들의 수리시설을 위하여 막은 것이었으며, 수원이 매우 좋을 뿐만 아니라 보가 높고 넓어 고기가 이곳을 올라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지금은 위 에 큰 저수지가 생기는 바람에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쇠중골

동리 뒷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말영골

쇠중골 밑에 있는 골짜기이다

메통골

말영골 밑에 있는 골짜기이니 비가 오면 토사가 많이 내려온다

못골

매통골 및에 있는 골짜기이니 못이 있다.

구릉

제일 남쪽에 집현면 사촌리로 통하는 골짜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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