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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반성리 선원동(仙源洞)·가곡(佳谷)·반월(半月) 마을이었다. 1914년 3월에는 진주군 일반성면 가곡동(佳谷洞)·선동(仙洞)·창촌동(創村洞) 각 일부로서 가선리(佳仙理)라 하였다. 1963년 10월 1일에 소아(蘇芽) 마을이 신설되어 선동, 가곡 소아 3개 마을이 되었다.
일명 선학골이라고 한다. 가선리 선동마을로서 동네 뒷산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편 형세를 이루고 있다.
선동입구에 있는 조그마한 산이다. 고분이 있어 마을을 수호하고 있다고 한다.
반성국교 앞에 있는 조그마한 산이다. 진양지의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순절한 조충절공의 장사를 지낼 때 백학이 날아와 그 장지로 인도하였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한다. 일명 고동산이라 한다.
선동 내 골짜기에 있다.
가선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다. 가실(佳實) 또는 갓고실이라고도 한다.
가곡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개암으로 넘어가던 길이다.
가곡에 있는 골짜기이다. 조선 시대에 절이 있었으나 절에 빈대가 많아 망하였다고 한다.
가곡 북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일명 너분등이라 하며 가곡 남쪽에 있는 산이다. 넓은 산 등으로 불린다.
가곡 동쪽에 있는 산이다. 서낭당이 있다.
가곡 북쪽에 있는 산이다.
가곡 남쪽에 있는 시내이다. 국천이라고도 한다.
가곡 남쪽에 있는 들이다. 말의 꼬리 혈이라 한다.
가곡 북쪽에 있는 산이다. 옛날에 해일이 밀려와 시루만큼 남고 물에 잠겼다 한다.
가곡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쪽에 선녀봉이 있고 감나무가 무성하여 시목골이라 칭한다.
가곡 남쪽 골짜기에 있는 약샘을 말한다.
가곡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용메등(등성이)이 있다.
가곡 남동쪽의 골짜기이다.
가곡 앞에 있다. 느티나무 군(群)이 밀집하여 회의장소 등으로 쓴다. 둘레 4m되 는 귀목나무가 있으며, 서나무 등 10여 그루가 있다.
수리봉 아랫쪽에 있던 터이다.
가곡 동쪽에 있는 소류지이다. 미 잉여농산물(480호, 밀가루)에 의한 영세민 구호사업으로 축조되었다.
일명 농막동(農幕洞)이라고도 한다. 약 60년 전에 이반성 가산에 사는 수백 석지기 부자가 자기 소유 농토를 관리하기 위하여 이곳에 농막을 짓고난 후 부터 농막골이라 하였다. 현재 대단위 양계 양돈으로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소아마을 옛 이름이다.
이반성면의 발산과 장안에서 흐르는 물을 막아 반성들에 대었다 는 소아 앞 제방을 말한다.
개암에서 동쪽 소아마을로 가는 길목의 돌출된 곳이다. 산자락이 자래 등같이 생겼다하여 자래등으로 지어졌어며 지금은 도로 확장으로 허물어 졌다.
소아 북쪽 골짜기에 있는 못이다. 미 잉여농산물(밀가루)에 의해 영세민 구호사업으로 설치되어 소아마을 앞들 관개용수로 이용한다.
소아마을 앞 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