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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상사면 방촌리(上寺面芳村里)·중촌리(中村里) 각 일부로서 방촌리(芳村里)라 하고 진주군 사봉면에 편입되었다.
방촌 서북쪽에있다. 마을이 집단촌을 이루고 있었으나 1978년도 남해안 고속도로 개설로 인하여 분동되어 있다.
1965년 3월 6일 사봉초등학교 등건분교장으로 개교, 1970년 3월 1일 등건국민학교로 승격, 제 21회 졸업생을 배출(1,028명) 하였다.
남쪽에 위치한 산이다. 배를 덮어 놓은 형상이라 하여 배밑등이라 한다.
방촌 서북쪽에 있다. 골짜기로서 선비들이 넘나들면서 쉬는곳이다.
사부랑골과 배밑산 사이의 고개이다.
방촌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방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1969년 준공되었다. 식량증산에 기여한다.
고개를 넘나들면서 행인들이 돌맹이를 한 개 한 개 모아 돌산을 만들었으나 1978년 고속도로개설로 인하여 없어졌다.
측량 기점이 있는 산의 이름이다.
함평모씨(咸平牟氏) 문중의 재실이다.
개를 길러 사고 팔던 곳이다.
미치동, 미추동이라고도한다. 방촌마을 북쪽에 있다.
미치동에 있다. 증 예조판서(贈禮曹判書) 이명걸의 비(합천이씨 문중)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명걸 장군(증 예조판서)이 마을 아랫목인 널무늬에서 왜군과 치열한 접전으로 순직하니 그 시신을 미추동에 안장하고 그 후손들이 터를 잡아 안주하였으며 후손들이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앞에 벚꽃을 심어 봄이되면 꽃마을이 되었으나 도로확포장 사업으로(80년대) 없어졌다.
동북쪽 산허리에 있는 길목이다. 천년이 넘었다는 고목이 있어 고개를 넘나드는 길손들이 무사 여행을 기원 했다는 전설이 있으나 1984년 여름 낙뇌로 인하여 고사하고 흔적만 있다.
마을앞 넓은 들이다. 옛날에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북쪽산에 있다.
방촌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삼을 많이 심는 곳이다.
용시들에 있는 소이다. 옛날에 물속이 깊어(명주실 타래를 풀어도 안 닿았다고 함)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1979년 경지 정리로 인하여 메워졌다.
윗골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밤이되면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서 골짜기로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북쪽 신기골 위에 있는 옹달샘이다. 가뭄이 극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자식이 없는 아낙네가 정성들여 기도하면 반드시 자식을 붙들어 준다는 샘이다.
마을 가운데 길게 트인 골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을에선 유일하게 이곳만 황토땅이라 한다.
서북쪽 용시들 가운데 있는 건널목이다. 임진왜란때 이곳에서 전투를 하였으며, 1967년 경지정리 사업으로 흔적이 없어졌다.
동쪽에 있는 느티나무이다. 둘레 5m이며 동신제(洞神祭)를 모시는 고목이다.
북동쪽에 있다. 1940년에 준공하여 식량증산에 기여하고 있다.
서남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남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남쪽에 있는 내이다. 반성천으로서 남강으로 흘러가는 내이다.
북동쪽 위에 있는 마을이다.
서쪽 벼랑위에 있는 바위이다.
합천이씨 재실이다.
합천이씨 재실이다.
합천이씨 재실이다.
합천이씨 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