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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상봉면 봉대리(上奉面鳳垈里)·모곡리(茅谷里), 하봉면 임내리(下奉面林內里) 일부로서 봉곡리(鳳谷里)라 하여 사봉면에 편입되었다.
조선조 숙종 중엽에 경주김씨가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와 살았다. 뒷산의 형태가 봉이 알을 품은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봉대라 하였다.
봉대마을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조선조 정조 중엽에 재령이씨가 이 골짜기로 처음 들어와 북지라고 하였다. 현재는 봉대이다.
뒷산 북쪽에 있는 산 봉우리이다.
북쪽에 있는 산이다. 전쟁을 하게 되면 대장기를 꽂고 진을 쳤다는 봉우리이다.
중앙에 있는 우물이다.
함새미 옆에 있는 바위이다. 거북 모양과 같다고 하여 거북바위라고 한다.
앞 들 복판에 있는 숲이다.
남쪽 사곡리와 경계 지점의 교량이다.
마을 앞에 있는 산이다. 말과 같다고 하여 서마산이라고 한다.
마을 뒤산에서 복새가 흘러 내려 쌓인 둑이다.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어씨들이 못을 만들어 못이 있는 골이라 하여 못골이었으나 현재는 없어졌다.
마을 앞 들복판에 있는 논이다.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마을 앞에 있는 논이다.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동쪽에 있는 보이다.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남동쪽에 있는 들이다.
경주김씨 문중의 재실이다.
재령이씨 문중의 재실이다.
1981년에 건립한 경주김씨 문중비이다.
1967년 건립, 식량증산에 기여한다.
1984년 건립, 식량증산에 기여한다.
거곡을 말한다.
거곡을 말한다.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북쪽에 있는 산이다. 말이 목이 말라 물을 먹는 모양이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서북쪽에 있다. 옛날 옹기를 만든 골짜기라고 한다. 흔적이 있다.
고려 말기 70세가 넘으면 먹을 식량과 의복을 준비하여 토굴속에 넣어 생매장한 곳이라고 전한다.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둑이 되어 있었으나 그 자리에 소류지 둑이 되었다.
남쪽에 있는 교량이다.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북동쪽에 있는 산이다. 고려장터가 있는 산이다.
서쪽에 있는 산이다. 등잔처럼 생겼다 한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남서쪽에 있는 골이다.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재령이씨 재실이다.
재령이씨 재실이다.
재령이씨 재실이다.
재령이씨 재실이다.
진양정씨 문중 재실이다.
1941년 준공. 식량증산에 기여한다.
1953년 준공. 식량증산에 기여한다.
모곡 마을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초문마을이다.
입구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총각이 홀로 살았다고 한다.
초문 중간에 있다. 작고 깊은 골짜기이다. 숨어서 살았다고 한다.
돌배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큰 골짜기와 닮은 골짜기이다.
초문 서쪽에 있는 산이다. 지형이 말구시처럼 생겼다.
1965년 준공. 식량증산에 기여한다.
초문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재령이씨 문중 재실이다.
재령이씨 문중 재실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곡리 모곡 마을이 되었다.
입구에 있는 산이다. 지형이 가물치처럼 생겼다.
남쪽에 있는 산이다. 방아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뱀머리 모양으로 생겼다.
곡부공씨 문중 재실이다.
함안조씨 서당이다.
1949년 준공. 식량증산에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