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1914년, 상사면 우곡리(上寺面隅谷里)·사령리(沙令里)·방촌리(芳村里), 일반성면 창촌동(一班城面倉村洞) 각 일부로서 사곡리(沙谷里)라 하여 사봉면에 편입 되었다.
우곡마을에서 1979년 8월1일에 분동되어 사봉시장을 설치하였다.
1952년 8월에 시장을 개설하여 5일장으로 유지되어 왔으나 현재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1973년 7월23일에 건립하여 경영하여 왔으나 조합원의 뜻에 따라 현재 새청사를 신축중이다.
진등마을 앞 대로변에 있다.
1982년 건립하여 노인들의 휴식처로 운영되고 있다.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북쪽에 있는 산꼭대기이다. 솔 한 그루가 정자같이 생겨서 솔정자라 하고 현재 비석이 있다.
서쪽에 솟은 산이다. 불당이 있었다 한다.
서쪽에 있는 골자기이다. 비석이 있었다 한다.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흰버들이 있다.
마을 동북쪽에 있다. 우곡 선생의 사위가 나주목사로 재직하다가 퇴임하여 살았다고 하여 나주골이라 한다.
동남쪽에 사당이 있었다 하여 사당골이라 한다.
정온 선생이 띠집을 지어 살던 곳으로 우곡정의 시초 건물이다. 우곡 서쪽 정상을 말한다.
동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새들이 넘나드는 길목이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가재가 많이 서식하였다 한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성지가 있었다고 한다.
동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여우목과 같다고한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고기와 새가 만나는 골이라고 한다.
동쪽에 있는 들이다. 돌이 서 있었다고 한다.
동쪽에 있는 들이다. 내천 안쪽에 있다.
동남쪽에 있는 들이다. 반성시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남쪽에 있는 들이다. 새들의 길목이라 하여 조통들이라한다.
남쪽에 있는 골이다. 골의 길이가 오리나 된다고 한다.
동남쪽에 있는 골이다. 말 사육장이 있었다 한다.
남쪽에 있는 들이다. 머리 모양의 들이다.
서쪽에 있는 들이다. 돌 앞쪽이라 한다.
우곡선생의 묘소가 있는 등으로 우곡 중앙에 있다.
동쪽에 있는 고개이다.
아래쪽 숲이 있는 등이다. 우곡 선생이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동네 위쪽에 있는 숲이다. 우곡 선생이 심은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 된다.
서쪽 정상에 있다. 정자로서 우곡 선생이 기거 하던 곳이다.
진양정씨 문중재실이다.
진양정씨 문중재실이다.
전주최씨 문중재실이다.
1963년 3월에 건립한 진양정씨 문중비각이다.
1944년에 준공, 식량증산에 기여한다.
1947년에 준공, 식량증산에 기여한다.
서남쪽에 있는 교량이다.
사령골(새롱골)과 추동(가라골)을 합하여 사동마을 이라고 한다.
우곡 정선생의 사위가 나주 목사로 재직하다가 퇴임하여 나주골에 살았다고 하며, 나주 목사의 사령들이 살았다고 하여 사령골(현재 사동마을)이라 한다.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전에 가래(추자)나무가 있었다.
동북쪽에서 봉곡리로 가는 고개이다. 목동들의 놀이터였다고 한다.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이 반달처럼 생겼다.
달골에 있는 정자나무이다.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남쪽에 있는 고개이다. 미륵이 있었다 한다.
사령골이다.
북쪽에 있는 들이다.
사령골 앞에 있는 보이다.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약새미가 있는데 예전에 더운물이 나왔다고 한다.
약새미골이다.
약새미골이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온수골에 있는 터이다. 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참새미가 있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금광을 채굴하던 골이다.
달골앞에 있다. 묘가 많은 골이다.
가라골이다.
우곡 마을에서 1934년 사동 마을로 이전하여 1989년 12월에 면청사를 신축하였다.
우곡 마을에서 1934년에 사동마을로 이전하여 1980년에 신축하였다.
진등마을에서 1990년 이전 신축되었다.
1925년 5월 12일 인가. 1925년 7월 1일 개교. 제 62회까지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경주정씨 문중재실이다.
1941년 준공하여 식량증산에 기여한다.